안녕하세요. 독자님.
사진팀 신선영 기자입니다. 2023년의 마지막 뉴스레터를 쓰게 되었네요.
님은 언제쯤 연말이 왔음을 실감하시나요? 저는 송년호 ‘올해의 사진’을 준비할 시점이 되면 ‘아 벌써 올해도 다 갔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사진기자와 외부 작가들의 사진을 취합하며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돌아보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시사IN> 직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시끌벅적한 송년회도 빠질 수 없습니다. <시사IN>은 연말에 격려의 의미로 내부 시상식과 경품 추첨식을 진행하는데요. 경품 추첨식은 평소 <시사IN>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됩니다(ㅎㅎ). 경품의 부피가 커질수록 열기는 후끈 달아오릅니다. 무작위 이름 뽑기에 당첨된 동료에게 축하와 부러움의 눈길이 쏟아집니다. 아, 저는 한 번도 경품에 당첨된 적이 없습니다(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송년회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35년 11개월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정희상 기자의 정년을 맞아 퇴임식이 열렸습니다. “이 직업을 택해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는 길을 달려왔다고 생각한다”라고 소회를 말한 정희상 기자는 <시사IN>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소금’을 선물했습니다. 그가 지금껏 기자로 살아오며 추구해온 <시사IN>의 역할과 바람이 담긴 선물이라고 느꼈습니다.
올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 인상 깊었던 취재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합니다. 가끔 온몸의 신경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카메라 렌즈로 ‘줌 인’하는 것처럼요. 독자님도 아시겠지만 12월21일 국회에서는 ‘2024년도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앞서 토론자로 나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로 운을 떼며 반대를 호소했습니다.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라 일부를 아래에 옮깁니다.
“저는 동생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 동생은 중증 발달장애인입니다. 저는 어제 동생과 함께 국회로 출근했습니다. 빈 활동 지원 시간을 메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배정한 월 150시간의 활동 지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와 같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어떻게든 임시변통으로 개인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보지만, 이건 참 연약해서 자주 삐걱거립니다. (중략)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부가 늘렸다는 장애인 돌봄 예산은, 최중증 장애인 가운데서도 극소수를 대상으로 합니다.”
장 의원이 단상에서 발언하는 동안 다른 국회의원들은 무얼 하는지 봤습니다(국회의원석 위층에는 취재구역이 있습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오랜만에 국회에 나타나 자신의 자리에서 한동훈 전 장관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중진 의원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다른 의원 자리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대놓고 ‘딴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통과될 거라며 야유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요.
역시 올해도 예산안은 거대 양당의 합의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사이 여야 지도부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제대로 챙겼다고 합니다. 한 예로 약 119억원이 증액된, 김기현 전 대표의 지역구인 울산에는 25억원 예산이 드는 ‘치유의 숲’이 내년에 조성될 예정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16만명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내년에도 올해 같은 어려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산이 느닷없이 삭감된 지방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들은 12월31일 마지막 상담을 끝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시사IN> 제848호 '사람IN' 기사 참고).
‘모두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날 국회에서 그 누구보다 정치인다웠던 장 의원의 모습은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희상 기자의 말처럼 언젠가 뒤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는 길을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님과는 올해보다 더 나은 2024년에 다시 인사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2023년 한 해도 <시사IN>과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