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IN> 사회팀 이상원입니다. 몇 차례 썼는데도 독자분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이 지면은 아직 익숙하지 않네요. 기사를 쓸 때와 마음가짐이 자못 달라집니다.
최근 이오성 기자와 함께 전자책 <검찰공화국 시대, 100가지 질문>을 펴냈습니다. 저자 소개에 ‘매주 사람들이 관심 가진 이슈에 특히 흥미가 동한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조직에 몸담은 기자들끼리도 성향이 좀 다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을 파헤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기자도 있고, 자료에서 통찰을 찾아 전하려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모두가 알지만, 견해 차이가 첨예한 사안의 전선을 살피는 데서 일의 재미를 찾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면 건강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게 한국 사회가 합리적 결론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관계나 각 진영의 논리만 소개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사건들도 종종 마주합니다. 현장에서만 무게가 느껴집니다. 재작년 이태원 참사가 그랬습니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기에 저도 그 참혹함을 전부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실물센터의 광경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시커멓게 때 묻은 신발과 옷가지를 생존자와 유가족이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조용하고 스산한 체육관 바닥에 유실물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저 신발은 어떻게 벗겨졌을까, 어떻게 더러워졌을까, 그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유가족의 눈물과 분향소 시민들의 추모는 슬픔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체육관에 놓인 물건들은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국민의힘이 1월18일 의원총회에서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정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대통령실 앞에서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삭발을 했습니다. 어린 자식의 영정을 들고 머리카락을 깎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기자는 사진의 힘을 느꼈는데, 포털사이트 댓글은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유가족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비난까지 가하는 이들이 놀라웠습니다. 어떤 사망 소식에 대해선 댓글창을 닫는 포털이 어째서 159명이 희생된 참사를 두고는 혐오의 장을 방치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듭니다. 현장에서 느낀 바를 전부 전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참사의 흔적을 본 뒤 받은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 정말 글로 쓸 수 없는 일이었는지 자문합니다. 역량과 성실성이 부족해서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오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숨은 의도를 넘겨짚기에 앞서 기자의 능력과 기사의 질을 먼저 의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모습을 온전하게 알 수 없는 현장도 있음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를 알아봐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그랬듯 <시사IN>은 이 문제를 성실하게 취재할 예정입니다('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세월호 관련 사람들을 만나는 취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