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오성 기자입니다. 독자님과 후원자님들께 벌써 세 번째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기억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첫 번째 편지에서 말씀드렸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때 ‘고참 기자의 눈으로 본 한국 언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죠. 장황한 이야기가 될까 싶어 망설였는데, 그저 님과 차 한잔 나누며 수다 떤다는 마음으로 힘 빼고 글을 써볼까 합니다.
저는 2000년 6월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죠. 제가 입사한 언론사는 <말>이라는 시사 월간지였습니다. 흔히들 ‘말지’라고 불렀죠. 지금 젊은 분들은 잘 모를 테지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사건을 폭로하면서 유명해진 매체입니다.
보도지침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언론탄압이었습니다. 언론에 외압을 행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가안전기획부·기무사 등 국가 정보기관이 언론사 편집국에 상주하면서 ‘데스킹’을 했던 사건입니다. 단어를 바꿔라, 사진을 교체해라, 기사 논조를 다시 잡아라 등등 ‘명실상부’ 언론사 편집국장 노릇을 했던 사건이죠. 한국 언론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흑역사가 있었을까요?
‘서울의 봄’ 좌절 이후 언론계에도 삭풍이 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고분고분하지 않던 언론인 수백 명을 해직시켰습니다(200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언론인 학살’이었죠. 1986년 <말>의 보도지침 사건은 이듬해인 1987년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저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유서 깊은 언론에 21세기의 첫해에 발을 디뎠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신문이라 불리는 오마이뉴스 창간이 2000년 2월이니, ‘미디어의 대격변’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마이뉴스 창간을 주도한 오연호씨 역시 월간 <말>의 기자였네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요즘 한국 언론이 왜 이 모양이냐며 개탄하시는 분들 많으실 걸로 압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한국 언론은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랑 비교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2000년대와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언론계에는 ‘구악’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번듯한 언론사 기자인데 기자 윤리가 의심스러운 이들을 꽤 보았습니다. 촌지를 받거나, 사적 이익을 위해 관련 기관에 (취재를 빙자해)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습니다. 대학병원에 출입하는 기자가 힘 좀 써서 지인에게 병실을 마련해줬다고 자랑처럼 떠벌리기도 했고요.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기자는 지금도 있지만, 과거에는 더했습니다. 기자랑 경찰이랑 목사가 밥을 먹으면 밥값은 식당 주인이 낸다는 우스갯소리가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오죽하면 나중에 김영란법 대상에 기자를 포함했겠습니까. 물론 그때도 그런 행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지만, 실제 현장에서 변화는 더뎠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당장 그 언론인이 뉴스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
직업윤리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들여 쓴 기사의 품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해 기사를 작성하고, 해외 사례를 풍부하게 취재하고, ‘시각화’를 통해 훨씬 보기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사IN>도 ‘화물차를 쉬게 하라’ ‘김학의 사건 아카이빙-암장’ ‘이태원 참사 특별 페이지’ 같은 기획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뉴스를 생산하고 있지요. 최근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사진팀에서 진행하는 100인 인터뷰도 언론계에 좋은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IT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언론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팩트’에 엄격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를 이중삼중으로 확인하는 ‘크로스 체크’가 기초적인 의무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의도에 널리 퍼진 이야기다”라는 식의 ‘카더라’ 기사도 예전보다는 덜해 보입니다. 사실관계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조심하며 신중을 기하려는 태도가, 제가 꼬마 기자였을 때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팩트가 틀리면 곧바로 정정보도를 내보냅니다. 과거에는 좀 느슨했습니다. 특히 ‘바로잡습니다’에 인색했습니다. 틀린 걸 틀렸다고 인정하는 게 불명예라고 여겨서인지, 차일피일 미루다가 법적 공방의 결과가 나온 뒤에야 정정보도를 내는 경우가 많았죠. 2003년인가 <중앙일보>가 그해 자사의 오보를 정리하는 기사를 낸 것을 두고 ‘한국 언론의 한 단계 도약’이라며 언론계 안팎에서 큰 칭찬이 쏟아질 정도였습니다.
과거 ‘구악’들이 설치던 시절 언론은 잘나갔습니다. 권력과 맞짱 뜰 만큼 힘이 있었고, 돈도 잘 벌었습니다. ‘기자 완장 차고’ 돌아다녀도 (속으로는 욕해도)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려웠죠. ‘자정’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언론은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들은 지 오래고, ‘기레기’라는 말이 일반명사가 되었습니다. 언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과거에 비해 기자들의 ‘직업정신’ ‘직업윤리’가 한 단계 도약했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의 위기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이대로는 존중받을 수 없고, 심지어 생존할 수도 없다는 위기의식이 더 나은 기자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언론의 수준이 나아졌다고요? 나는 그런 기사 거의 본 적 없는데요?” 하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좋은 기사’는 모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기사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공들여 쓴 기사’들이죠. 그런데 이런 기사들,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된걸까요? 일단 매체와 기자의 수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특히 정치 쪽이 그렇습니다. 혹시 국회 기자실 풍경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입니다. 10년 전에 국회 출입을 하면서 등록된 출입기자 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는데, 2020년에는 등록된 매체가 500여 개에 기자 수는 1700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마 더 늘었을 겁니다.
저는 국회 기자실이 ‘기자 사육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수백 명을 한곳에 모아놓고 정치인이 필요할 때마다 마치 먹이를 던져주듯 그 앞에 섭니다. 무슨 말을 해도 뉴스가 나오니까 정치인 입장에서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언론사가 경쟁하다 보니 정치 기사는 ‘속보’와 ‘받아쓰기’로 내달리게 됩니다.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 중에는 정치인의 말을 기록하느라 매일 200자 원고지 1000~2000장씩 타자를 친다며 푸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들이 실시간 온라인으로 송출되면서 포털 뉴스에 도배됩니다.
몇 해 전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한 언론사의 기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한 기자당 매일 기사 4.8건을 썼고, 하루에 16건을 쓴 기자도 있었습니다. 기자든 독자든 ‘좋은 기사’를 쓰고 읽기 어려운 세상이 된 셈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언론계처럼 더 꼭 들어맞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몇 해 전에 타사 기자들과 해외 출장을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해외 출장 중인 기자에게 회사에서 수시로 연락이 오더군요. 이거 막아라, 저거 막아라, 보도자료 정리해라 등등. 이런 상황에서 그 기자들이 해외 출장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된 취재를 하고, 양질의 기사를 써낼 수 있을까요?
언론 탓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좋은 뉴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 그 기사를 읽어주는 독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뉴스를 소비하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할 뉴스는 잘 소비되지 않습니다.
언론 입장에서 가장 편한 길은 독자들의 도파민을 떨어뜨리지 않을 만한 기사만 생산하는 겁니다. 한쪽 진영의 이야기만 편드는 매체가 난립하는 현실은, 독자들이 그런 기사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레기 지옥’에서 점점 더 헤어나오지 못할 테지요.
<시사IN>의 고민도 깊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본령이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면서도 독자님과 후원자님이 저희에게 기대하시는 양질의 저널리즘을 동시에 구현하는 일입니다. 올해부터 <시사IN>이 주 5일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고 나선 것도 그 고민의 일환입니다. 늦었다면 늦은 시도입니다만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호응해주셔서 구독자 11만명을 돌파하는 등 ‘도약’ 중입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본령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미디어 환경이 격변한다 해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공들인 양질의 기사를 독자님과 후원자님께 선보이는 것이겠죠.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시사IN>이 깜빡깜빡 ‘등대’ 같은 구실을 하겠다고 감히 약속드려봅니다.
쓰다 보니 결국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네요. 님에게 차 한잔 나누자고 했다가 술자리로 옮겨 한바탕 신세 한탄을 한 기분입니다. ^^;;
얼마 전 지난해 썼던 ‘대국민 검찰 인식 조사’ 기사를 묶어 <검찰 공화국 시대 100가지 질문>이라는 전자책을 펴냈습니다. 저자 소개 말미에 이렇게 썼습니다. ‘<시사IN>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기자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살짝 바꿔서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읽어주시는 독자님과 후원자님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기자 일을 하고 있지 못할 겁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