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모든 사회적 관심이 정치 부문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총선이나 정치인과 관련된 이런저런 기사와 동영상을 소비하는 시간이 올해 들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공천을 앞둔 일부 (예비) 정치인들의 특정 행위에 심술궂은 놀라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문가적 경력과 자존심을 스스로 짓밟고, 공천 라이벌에 대한 상스러운 이야기를 유튜브에 나가 주절거리며, 오랫동안 쌓았을 개인적·공적 인간관계를 삽시간에 파탄 내고, 공천권자에 대한 낯 뜨거운 아부를 공개적으로 피력하기도 하더군요. 저에겐 그들이 일종의 자해(自害) 행위로 엄청난 개인적 ‘비용’을 미리 치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이런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일까요? 주로 경제 기사를 쓰다 보니 갖게 된 못된 사고방식인데, 저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그(녀) 자신의 개인적 편익과 비용을 따져서 평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녀)가 저런 일을 하는 이유는,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일 거야’라는 식이죠.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엄청난 사적 편익(경제적이든 경제 외적이든)을 기대할 수 있는 직위’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듯합니다. 더욱이 이 가설(?)을 정황적으로나마 검증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10년도 넘은 일인데,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라디오 인터뷰 방송에서 진행자 손석희씨(JTBC 전 사장)에게 ‘출마할 생각이 없나’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손씨는 ‘소는 누가 키우겠나’라며 그럴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습니다. 홍준표의 짓궂은 도발에 손석희가 능란하게 대응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시의 저는 이 이야기가 인터넷 담론장에서 큰 소동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좀 놀라웠습니다. 정치인은 ‘소를 키우는(생산적인 일을 하는)’ 일반 시민이 아닌 뭔가 좀 특별한 직분이란 의미가 깔려 있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당이나 제도권 정치인이 비정치인의 공천을 지원하는 행위와 관련해서 ‘발탁’ ‘은공’ ‘배은망덕’(탈당하거나 이른바 ‘계’를 바꾸는 경우) 같은 용어가 예사로 사용되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수많은 시민을 대의(代議)하는 것은 정말 피곤하고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힘든 일로 간주되지 않나요. 그런 끔찍한 지경으로 다른 사람을 몰아넣은 것이 은혜나 은공을 제공한 행위라니요? 정치인이 정말 시민들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면 절대 통용될 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체로 국회의원이 엄청난 사적 편익을 누리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합니다. 물론 저 자신이 대의(大義)를 모르는 소인배라서 이 정도의 생각밖에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역시 세상에 대의(大義)를 중시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정치다운 정치’를 위해 실현되어야 할 과제는, 의원이란 직위의 개인적 편익을 상당히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나가는 것 아닐까요? 의원직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 공공연하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불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걸러지는 효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국회 개혁’안들은 설사 실현된다 하더라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겁니다. 국회의원 세비를 중위소득 수준으로 내린다고 해도 그 차이(연간 9000만원 정도)보단 의원직의 편익이 훨씬 클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의원 수 감축은 의원직의 희소성을 한층 강화시켜 해당 편익을 오히려 훌쩍 팽창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변진경 기자가 뉴스레터를 쓰라는데 인사만 드리기는 뭐해서 대의민주주의의 탄생 때부터 이어져온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거려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