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사IN> 전혜원입니다. 반년 만에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신지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경제팀에서 사회팀으로 옮겼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얼마 전 정치팀 발령을 받아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2013년 입사해서 벌써 12년 차인데, 정치팀은 2012년 대선 때 인턴기자로 뛴 이후 처음이라 하루하루 정신이 없네요.
어떤 일이든 10년 정도 하고 나면 소위 ‘현타’, 현실 자각 타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도 그랬습니다. 매주 즐겁게, 마음을 다해 일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딘가 허탈했습니다. 사실 제가 욕먹는 기사를 좀 썼거든요(웃음). ‘노조여 세상을 바꾸려면 호봉제부터 바꿔라’ ‘정년 연장은 왜 사회정의가 아닌가’ ‘연금 정치,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주제만 들어도 무시무시하죠? 나름대로 제가 도달한 최선의 이해를 바탕으로 썼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언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사는 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노동·복지 쪽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질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새로운 부서에 와서, 거의 이직만큼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빠른 ‘일의 속도’에 적응 중입니다. 저는 어떤 이슈에서 대립하고 있는 두 당사자를 만나, 혹은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를 만나 깊고 집요하게 묻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종이 수첩에 세모(△)를 그려 질문을 미리 적어가면서. 그러다 보면 양쪽의 세계관이 어디서 엇갈리는지 찾아낼 수 있었고, 보수언론도 진보언론도 말하지 않는 약한 고리에 가닿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기 정치팀은 어떻냐고요? 바쁜 선거철에 만남을 청하기는 언감생심, 한 5분쯤 전화로 질문하면 “이제 그만하시죠” “이 정도 하십시다”라는 차디찬 말이 돌아옵니다. 소심한 인프피(INFP)는 마음의 상처를 애써 숨기며 “아이고! 감사합니다 의원님”이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습니다(주먹 울음).
매일매일 저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날들이지만, 그럼에도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다른 길로 걸어가면 길게 느껴진다고 하잖아요. 루틴을 반복하면 인생이 빨리 지나가버리지만, 여행을 가고 새로운 맛집에도 도전하다 보면 인생이 조금은 느리고 다채롭게 흘러가는 것처럼요. 서른일곱, 12년 차 커리어에 아직 배울 게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새로운 두근거림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일터에서 어떻게 지내시나요? ‘좋은 삶’은 ‘좋은 일’과 떼어놓기 어렵다고 저는 여깁니다. 여러분의 일터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4월 총선 때 누굴 뽑을지는 정하셨나요? 정치 뉴스 보면 화나고 한숨만 쉬신다고요? 저도 그런데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엘리트라도 표를 얻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는 것, 소위 중도층의 민심을 거스르지 못하기에 여당도 비상대책위원회를 부랴부랴 꾸릴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민주주의의 힘을 느끼곤 합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라고 정치학자 최장집은 말한 바 있지요. 안타깝게도 우리 공동체에 중요한 문제들이 아직은 총선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유권자 시민의 매서운 눈이 그런 문제들을 기어이 논의의 테이블에 올릴 거라고 믿고, 계속해보겠습니다. 따뜻하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