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뉴스레터를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펜을, 아니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담당자는 주하은 기자인데 제가 대신 쓰기로 했거든요. 오늘(3월14일)이 마감 날인데 주하은 기자는 작성 중인 기사의 부담 때문에 뉴스레터를 쓰기가 녹록지 않다고 하더군요. “무슨 기사인데?”라고 물었는데, 답변을 듣고 완전히 납득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에 대해 쓰고 있다고 합니다.
나름 바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제가 주 기자의 대타 요청을 쾌히 수락한 이유는 금융상품 관련 기사로 골치를 앓는 그에게 공감과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해당 금융상품의 이름에 ‘연계’나 ‘파생’이 끼어 있는 경우, 기사 작성의 난도가 무섭게 치솟습니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ELS는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추종하는 파생금융상품’인 모양인데, 이로 인한 손실이 앞으로 수조 원에 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조 원 손실 가능성’이라는 현상을 서술하려면 ‘주가지수 추종’이 뭔지, 기초자산이나 불완전 판매는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거든요.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경제팀 기자라고 해서 다종다양한 금융상품들의 구조를 일일이 알지는 못합니다. 관련 기사를 쓰려면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해도 ‘아는 것’과 ‘쓰는 것’은 정말 천양지차(天壤之差)지요. 더욱이 기사엔 지면 제한이 있습니다. 개념부터 설명한답시고 쭈욱 써 내려가다 보면 기사가 한없이 늘어지다가 정해진 분량을 터무니없이 초과해버리곤 합니다. 기사의 구도에 맞춰 넣을 것은 넣고 뺄 것은 빼야 하는데, 마치 젠가 게임처럼 문장 하나의 삭제가 글 전체를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로서 현상을 쉽고 조리 있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는 것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기사의 이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개념이나 용어들은 어느 정도 짚고 넘어가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간지 기자는 일간지 지면보다 훨씬 긴 분량을 허용받으니, 어떻게든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융 관련 이슈는 ‘까다로워 보이는’ 외형 때문에 기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훨씬 쉽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나 볼거리들이 사방에 널려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독자들이 좀 더 금융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저의 SNS 계정에도 배우 송중기씨나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등 유명인을 사칭한 영상으로 ‘빨리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이상한 사이트로 유도하는 게시물이 뜨곤 합니다.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속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사기성 게시물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정치적 사기’에 면역력을 키우려 해도 금융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난 대선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장동 논란’에서, 정치인들이 상대방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함부로 말을 질러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통할 것이라고 봤겠지요. 대장동 사업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그의 발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분별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대장동 사업에 등장하는 ABCP, SPV, 시행사, 자금조달 등이 좀 더 대중적인 개념이었다면, 정치인들 역시 선동의 질(質)에 좀 더 신경을 썼을 겁니다.
지금 보니 주하은 기자는 여전히 편집국의 본인 책상에 붙어 앉아 정신없이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그가 독자들께 좋은 경제 기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