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IN> 교열기자 황정희입니다.
바야흐로 ‘글쓰기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갖가지 소셜미디어와 개인 블로그, 글쓰기 플랫폼 같은, 마음만 먹으면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쓸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거나 본인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욕구도 그만큼 커진 것 같고요.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책을 내려는 목표를 세우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더욱이 <시사IN> 독자님이라면 일상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분이 더 많지 않으실까 싶고요.
독자님께 두 번째로 쓰는 편지에 뭘 담을까 궁리한 끝에, 최근 일하면서 자주 맞닥뜨려 수정하게 되는 표현을 몇 가지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독자님께서 글을 쓰고 퇴고하실 때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요.^^ 아시다시피 주간지 마감은 늘 빠듯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시사IN>에 기고하시는 필자분이나 기자들이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퇴고한다는 것은 사치에 속합니다. 고치면 더 나을 표현이 제 손에까지 오게 되는 이유입니다. 아마 맞춤법 관련 책이나 사이트를 통해 아시는 것이리라 생각되지만, 다시 한번 환기하는 셈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복수 표현
‧ 우리말은 문장 속에 복수임을 알 수 있는 표현이 있으면 ‘–들’을 붙이지 않는 게 간결하고 뜻이 잘 들어옵니다. 말로 하면 지나칠 수 있지만 글로 쓰면 문장에 군더더기가 됩니다.
광장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 광장에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영화에는 유명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 → 이 영화에는 유명 배우가 여럿 나온다
숱한 의문들이 쏟아졌다 → 숱한 의문이 쏟아졌다
‧ 이미 복수를 뜻하는 말에 ‘–들’을 붙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청중들, 관중들, 대중들, 의료진들, 출연진들, 제작진들, 보좌진들’은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혹 여러 집단을 가리키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사동(사역) 표현 ‘ –시키다’
‧ ‘교육하다, 확대하다, 금지하다, 등록하다, 유지하다, 포함하다, 연결하다’ 따위의 타동사(능동의 동사)는 ‘교육시키다, 확대시키다, 금지시키다, 등록시키다, 포함시키다, 연결시키다’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제삼자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한다’라는 사동 의미를 부여할 때에는 ‘-시키다’를 씁니다.
수량 표현
‘-의’를 써서 숫자를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 알고 있지만 가벼이 여기거나 주의하지 않아서 많이들 쓰는 것 같습니다.
‧ 10권의 책이 → 책 10권이
‧ 30명의 관광객을 태운 버스 → 관광객 30명을 태운 버스
어림수 표현
수량을 어림잡을 때에는 ‘약-’ ‘-여’ ‘-가량’ ‘-쯤’ 중 하나만 써야 합니다. 겹쳐 쓰면 군더더기가 됩니다.
‧ 약 5만여 개가량 → 약 5만 개, 5만여 개, 5만 개가량
줄인 표현
받침 ‘ㄱ, ㅂ, ㅅ’에 ‘-하지, -하건대’가 붙은 말이 줄어들 때에는 ‘하’가 통째로 탈락합니다. ‘녹록하지, 익숙하지, 섭섭하지, 탐탁하지, 깨끗하지, 짐작하건대, 생각하건대’는 ‘녹록지, 익숙지, 섭섭지, 탐탁지, 깨끗지, 짐작건대, 생각건대’로 줄어듭니다.
‧ 녹록치 않다 → 녹록지 않다
‧ 미루어 짐작컨대 → 미루어 짐작건대
시제 표현(과거형)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지 않습니다. 마지막 용언에만 과거 시제를 나타내주면 됩니다. 특히 관형형으로 체언을 수식할 땐 현재형이 한결 자연스럽지요.
‧ 어제 먹었던 음식은 매우 비쌌다 → 어제 먹은 음식은 매우 비쌌다
‧ 어린 시절 겪었던 고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 어린 시절 겪은 고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교열자는 아무래도 정해진 규범(표준어규정,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 따위)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저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쓰임을 반영해 내놓은 ‘우리말샘’도 함께 참조합니다. 그런데 사전은 그 표현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주로 따질 뿐이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하는 문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 쓰임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인데도 사전 풀이에 맞춰서 고치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요. 언어도 그렇고요.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립국어원이 언어생활을 반영하여 새로운 표제어를 사전에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1000개를 표제어로 추가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그동안 동사로 한정된 까닭에 교열자를 난감하게 하던 ‘맞다’의 품사가 추가되었습니다. 비로소 형용사로도 인정받은 것이지요. 이제 ‘꿈이 정말 맞다니’ ‘네 말이 맞다’를, ‘꿈이 정말 맞는다니’ ‘네 말이 맞는다’로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물론 자연스럽게 넘어간 경우도 있지만요^^;). 이처럼 세상도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고 싶습니다.
곧 4월, 봄이 왔건만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계절입니다. 벚꽃은 피어도 사람들의 마음은 활짝 필 수가 없습니다. 기억해야 할, 스러져간 꽃들이 많은 까닭이지요. 마침 우리 지역의 대표를 뽑는 날이 다가옵니다. 마음에 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