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규택, 권성동, 권영세, 김도읍, 박형수, 유상범, 유영하, 정점식, 주진우, 조배숙, 김기표, 박균택, 백혜련, 송기헌, 양부남, 이건태, 이성윤, 주철현, 박은정.
제22대 총선 당선자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님 눈치채셨죠? 모두 검찰 출신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9명이 검찰 출신입니다(조배숙 의원은 검사로 임관했다가 판사로 전직했습니다).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를 꾸릴 규모입니다.
검찰은 기수 문화가 강한 조직입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과잉 대표’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조선일보> 출신 기자 19명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삼성그룹 출신 19명이 국회에 진출했다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까요.
윤석열 검찰 정권이기에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들은 검찰 출신이 많을 수 있습니다. 검찰 개혁을 하겠다는 야당에도 검찰 출신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습니다.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조직을 잘 아는 검사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 때부터 화두였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나아가 검찰총장 직선제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 개혁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마다 검찰은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습니다. 정치팀에 있을 때, 검찰 출신 여야 의원들이 검찰의 로비 창구가 되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검찰은 여당·야당 가리지 않고 로비를 합니다. 야당 의원도 결정적 순간에 본능적으로 친정에 기울었습니다.
이런 취재 경험 때문에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국회에서 검찰 출신을 퇴출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과격한’ 생각을 그때부터 했습니다.
전두환 군사 정권 때 집권당인 민정당을 ‘육법당’이라 불렀습니다. ‘서울의 봄’을 막은 12·12 쿠데타 세력인 육사 출신들을,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들이 뒷받침하며 군사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국회도 군인 출신과 법조인들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 하나회를 해체하며 정당에서도 군홧발을 퇴출했습니다. ‘정치군인’을 일소하며, 군은 민주적 통제가 이뤄졌습니다. 더 이상 군사 쿠데타를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군 출신 의원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검찰 출신은 늘었습니다. 검찰은 여전히 견제받지 않은 권력입니다. 윤석열 검찰 정권에서 검찰은 철옹성이 되었습니다. 국민의힘에 이어 또 다른 집권당인 ‘검찰당’이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야당 인사들을 먼지떨이 수사를 하는 윤석열 정부 검찰은, 2020년 4월7일 고발 이후 1474일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쥐고 있습니다. 김 여사를 한 번도 소환 조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여사 혐의가 없다면 무혐의 처분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검찰은 소환 조사도, 불기소 처분도 하지 않고 4월20일 현재 1474일째 ‘수사 중’이라고만 합니다.
“(김건희 여사 사건) 곧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2022년 7월2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회 답변입니다.
“법에는 성역도, 특혜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바르게 결론이 날 것이다.” 2023년 10월23일 이원석 검찰총장 국회 답변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 법률상 쟁점을 가지고 있다. 증인들과 물적 증거로 현출되는 사실관계가 새로운 것인지, 기존 수사 내용과 배치되는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 2023년 10월17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국회 답변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자랑하는 검찰이, 김건희 여사 앞에서는 작아집니다. 견문이 적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검찰이 1474일 동안 결정을 뭉개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의 ‘윤석열 가족’ 봐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검찰 정권 심판 선거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검찰 출신이 과잉 대표 되었습니다. 검찰 출신의 의회 진출이 해외에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우리 사법 체계는 프랑스·독일·일본과 유사한 대륙법 체계입니다. 식민지 시절 일본 제국주의가 이식한 사법 체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중의원, 참의원에도 검찰 출신들이 대거 진출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일본 검사들은 퇴임 뒤 정치권 진출을 부끄러워합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스스로 지켜낸 문화입니다. 연원이 있습니다.
1954년 한 고리대금업자가 어음을 도난당했다며 도쿄 지검에 고소합니다. 일본 검찰사에서 ‘특수 수사의 신’으로 불린 가와이 신타로 검사는 분실한 어음 3장에 주목했습니다. 선박회사인 야마시타 기선이 발행한 1000만 엔짜리 약속어음이었습니다. 검찰은 거액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경위를 추적해 검은돈의 출처인 금맥을 찾아냈습니다. 해운회사가 조선회사에 선박 건조를 발주한 뒤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만들었고 비자금은 정관계에 로비 자금으로 뿌려졌습니다. 당시 집권 여당 자유당의 거물 사토 에이사쿠 간사장이 연루된, 이른바 ‘조선의옥 사건(조선업계 관계자들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입니다.
검찰과 정치권은 정면충돌했습니다. 결국 이 수사로 1954년 12월7일 요시다 내각은 총사퇴했습니다. 조선의옥 사건은 일본 검찰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치권과 불가근불가원, 검찰과 정치권의 긴장 관계 유지입니다. 자연스럽게 검찰 안에서 퇴직 뒤 정치권 진출을 경원시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검사가 의원이 되는 걸 창피하게 여깁니다. 지금도 일본 참의원이나 중의원 의원 가운데 변호사 출신은 많지만, 한국 검사들처럼 정치권에 입문한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 조작(2009년)으로 신뢰가 떨어지고 수사력도 약화하였지만, 일본 검찰은 적어도 한국 검찰처럼 정치적 편향 시비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가 특종으로 보도한 자민당 파벌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은 도쿄 지검 특수부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자민당 파벌 6개 가운데 4개가 해체되었습니다.
프랑스·독일·일본 등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국가들 가운데 검사들이 대거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한국적인 현상입니다. 언론 개혁 입법을 기자 출신 의원이 하지 않아도 되듯, 검찰 개혁 활동도 굳이 검찰 출신 의원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검찰 출신 19명 의원 대신 그 자리에 경력 단절 여성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플랫폼 청년 노동자가 국회 문턱을 넘었다면 좀 더 민의가 반영되는 의회가 되지 않았을까요? 총선 결과를 여소야대가 아닌 지점에서 들여다본 소회입니다.
총선을 지켜보며 뉴스 소비 패턴의 변화도 실감했습니다. <시사IN>에서 제가 맡은 직책은 ‘랩장’입니다. ‘미디어 랩장’의 줄인 말인데 이름만 그렇고, 실상은 ‘디지털 노가다’ 부서입니다. 유튜브 방송을 하고, 포털에 기사를 전송하고, 전자책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최근에는 독자 관리프로그램도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유튜브, 포털, 페이스북, 홈페이지 등 콘텐츠 전파와 관련한 각종 데이터를 들여다봅니다. <시사IN> 콘텐츠가 어떤 경로로 소비되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합니다.
한때 언론사 콘텐츠의 주요 확산 플랫폼이었던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이제 미디어에 적대적입니다. 알고리즘으로 도달률이 형편없습니다. <시사IN>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처한 상황입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과 유튜브가 그나마 콘텐츠 확산 플랫폼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튜브 진출을 두고 고민도 적지 않았습니다. 프린트 미디어인 <시사IN>이 유튜브까지 해야 하나?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도 독자가 읽지 않는 기사는 기사가 아닙니다. 독자가 보지 않는 뉴스도 뉴스가 아닙니다. 특히 정치 뉴스 소비가 유튜브 중심으로 바뀐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언론사에 비하면 인원도 적고 스튜디오도 볼품없지만 4·10 총선 때까지 매일 오후 5시 주 5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했습니다. 장일호 기자·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등 유튜브팀과 정치팀 김은지·이은기 기자가 프로젝트팀을 꾸려 협업했습니다. 4월22일~26일 <시사IN> 유튜브는 한 주를 쉰 뒤 4월29일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유튜브에 이어 몇 가지 실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에 접근하는 독자들을 위한 허들을 최대한 낮추려고 합니다. 읽기 쉽고 보기 편하게 플랫폼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사IN> 종이책은 우체국 배송망을 이용합니다. 우체국마저 택배 물량 중심으로 배송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일반 우편물 배송이 더딥니다. 전자책은 종이책 배송에 불만인 독자들을 위한 일종의 보완재입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사진팀 기자들이 취재한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을 모아 새 전자책 플랫폼에서 무료로 펴냈습니다. 누구나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 실패하고 있는 페이월(유료화)도 최신기사에 한해 도입하려고 합니다. 갓 마감한 따끈따끈한 기사를 홈페이지에 바로 업로드해 구독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경박단소한 일간지 뉴스의 공짜 대체재가 포털에 널려 있습니다. 롱폼 저널리즘인 <시사IN> 콘텐츠는 대체재가 많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언론사에서 볼 수 없는, <시사IN>에서만 볼 수 있는 탐사 보도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님 같은 <시사IN>을 신뢰하는 독자가 있어야 가능하겠죠.
제가 2022년에 정기 독자, 전자책 독자, 홈페이지 회원 등 1만명을 대상으로 <시사IN> 콘텐츠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5060 세대는 ‘삼성 광고 삭제’로 탄생한 <시사IN> 창간스토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콘텐츠가 마음에 들어 구독하기도 하지만 후원 차원에서 구독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2030 세대는 창간 스토리 자체를 모르는 독자들도 많았습니다. 그저 콘텐츠가 마음에 들어서 구독하는 이들이 꽤 되었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시사IN>이 ‘언론 기업’으로 100년간 지속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서를 보기도 했습니다. 진성 종이책 독자를 유지하고 늘리면서, 포털에 종속되지 않고 이용하며, 주요 콘텐츠 플랫폼 실험을 이어가는 다양한 도전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람은 디지털 인프라 개선 작업을 마치면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비취재 부서에 있다 보니 써야 할 아이템이 눈에 보여 답답한 마음에 관련 파일을 만들며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 파일 제목이 ‘채 상병 사건’입니다. 취재현장으로 복귀해 채 상병 사건을 줄기차게 쓰고 있는 이은기 기자를 ‘사수’로 삼아 서포트하고 싶은 게 작은 소망입니다. 이은기 기자에게 말했듯, 첫 기사도 특종이지만 마지막까지 쓰는 기사도 저는 특종이라고 여깁니다. <시사IN>이 채 상병 사건의 끝을 보고 싶습니다. 다음 뉴스레터 때는 관련 취재 후기를 올리고 싶습니다. 주말 토요일 오후에 긴 뉴스레터였습니다.
독자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구독자 데이터를 보며 님에게 한없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님과 같은 독자 한 명 한 명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시사IN>을 함께 만드는 주인공입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님과 함께 독립 언론을 지속시키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