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IN> 문상현 기자입니다. 세 번째 편지 보내드립니다. 편집국 게시판에 걸린 순서표에선 제 차례가 까마득해 보이기만 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편지를 쓰기 전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이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보실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제가 쓴 기사 이야기를 할지, 편집국 뒷이야기를 전해드릴지(전한다고 쓰고 폭로라고 읽습니다)부터 가볍고 말랑말랑한 글을 써야 할지, 무게감 있고 통찰을 담은 글을 써야 할지 등등, 기사 쓸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제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언론사 제보 자체는 흔하지만, 기자의 언어로 전해드리는 제보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신경 쓰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자들의 시선 밖에 놓인 일들은 보통 제보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숨겨진 사실과 가려진 이야기들을 추적할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단독이나 특종이 이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그래서 제보는 기자들의 한줄기 빛이자, 취재의 동력입니다.
여러 형태로 제보를 받습니다. 알고 지내던 취재원에게 소개 또는 전달받는 일이 가장 잦습니다. 하루 종일 날아오는 보도자료와 새벽 3시에 정성껏 보내온 욕설 메일 틈에 섞여 있기도 하고, 제보자가 편집국 또는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오거나 무작정 찾아와 전해주기도 합니다.
어떤 제보든 허투루 보지 않습니다. <시사IN>과 저를 믿고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어렵고 큰 결심을 하고 보내온 제보입니다. 누가, 어떤 형태로 보내오든 꼼꼼히 확인하는 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직함이 적힌 명함을 처음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겪은 경험들도 한몫합니다. 기사로 쓸 수나 있을까 했던 제보가 막상 보도 직후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대로 대충 보고 넘어간 이야기가 얼마 뒤 다른 언론사의 특종이 되어 속이 쓰린 일도 있었습니다. 최근 수년 사이 돈을 받고 언론사에 제보를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오는 제보는 후순위로 미뤄둡니다. 많은 언론사에 동시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업체를 활용하시는 것 같은데, 그만큼 기자들의 관심도가 떨어집니다. 어느 언론사든 제보는 무료입니다. 그러니 혹시 제보할 일이 있어도 돈은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보자와 접촉할 때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보도 가능 여부와 관련된 말입니다. 모든 제보가 보도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제보자 개인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사회 전반으로 넓혀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공익성).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의 송사가 대표적입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제보가 공익성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이를 설명하면 “그럼 힘없고 돈 없고 억울한 사람은 어디에 이야기해야 하냐”라고 되묻는 제보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드리려 노력해왔는데, 만족하실 만한 답을 드리지 못하는 건 분명한 만큼 늘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사실에 기반한 제보인지도 따져봐야 합니다(진실성). 제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와 자료가 필요합니다. 의혹만으로도 충분히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도 있고, 수사기관에 준하는 수준의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기자도 있습니다. 이것도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후자 쪽을 우선 고려합니다. 제보자가 주장을 부풀리거나 거짓말을 한 사실이 취재 도중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보를 받고 사전 검증을 최대한 치밀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검증 대상에는 제보자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취재할 때보다 사전 검증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습니다.
정황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입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한 경우, 또는 취재 영역에서 제보의 진위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기자 개인의 역량 문제일 수도 있고,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로만 확인 가능한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와 제보자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상황 중 하나입니다. 그 밖에 보도하면 큰 파장이 예상되지만, 취재 윤리를 현저하게 해칠 가능성이 있어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교차 검증과 반론 취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돼 취재 방향이 뒤집히거나 막판에 보도 계획 자체가 무산되는 일도 잦습니다.
결국 기자 처지에선, 공익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근거와 자료가 충실한 제보가 가장 반갑습니다. 여기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단독, 특종)이라면 취재 과정이 험난하더라도 자신 있게 밀고 나갑니다. 문제는 이런 제보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이겠죠. 대부분의 제보는 앞서 나열한 요건 중 한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신 제보 기반 기사 중에는, 처음엔 앞서의 요건들이 빠져 있었지만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기사화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보 기반 보도는 취재와 기사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특정될 수 있는 제보자 보호입니다. 기관이나 기업 등에 소속된 내부 제보자들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기사로 공개한 서류 한 장, 심지어 기사 속 한두 문장으로도 특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끔 보도 전 공익 제보자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돕기도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제보자의 진짜 싸움은 보도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정신적·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보 기반 보도 후에는 표면적으로 사안이 잘 해결됐다 하더라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취재에 앞서 제보자와 많은 대화를 합니다. 앞으로 제보자 신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다른 제보자의 사례들을 미리 설명합니다.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지만 그동안 저금 많이 해두셨는지 묻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제보를 여럿 받고 있습니다. 사전 검증이 진행 중인 제보가 대부분이고, 그 중 팀장에게 보고한 제보도 있습니다. 정치팀 소속이라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제보도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쓴 제보 기반 보도를 보시게 된다면 저와 <시사IN>뿐만 아니라, 제보자에게도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