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편집국장 일을 하고 있는 이오성 기자입니다.
지난 5월에 편집국장이 된 뒤로 여러분께 처음 편지를 씁니다. 거의 1년은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4개월이네요. 이게 참 신기한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철들면서는 세월이 점점 빨리 간다는 감각뿐이었거든요(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는 건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니요!
결론: <시사IN> 편집국장을 하면 나이를 천천히 먹습니다^^.
최근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2025년에 만들어진 다큐입니다. 1925년 창간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100년 기록을 담았습니다.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뉴요커>는 국내 웬만한 일간지보다 직원 수가 많습니다) 같은 시사주간지라는 동병상련으로 이 다큐에 몰입했습니다.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만난 김현숙 선배(‘원 <시사저널>’ 문화팀장)께서 “<시사IN>도 100년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라며 추천한 작품이었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뉴요커>가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 르포를 잡지 전체에 ‘통권’으로 실음으로써 세계적인 반핵운동에 불을 지폈다는 것, 화학 살충제의 생태계 파괴를 고발한 레이철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이 <뉴요커> 연재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것 등등 말이죠. 다큐를 보며 그동안 <시사IN>이 불을 지피고, 고발하고, 뜻을 모았던 몇몇 기사들이 떠올랐습니다.
매우 놀랐던 점도 있습니다. 현재 <뉴요커> 편집장인 데이비드 렘닉이 무려 1998년부터 쭉 편집장을 맡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30년 가까운 장기 집권입니다. 1958년생으로 60대 후반인 그가 어떻게 저토록 오래 편집장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상상만 해도 진땀이 날 것 같았습니다. 다큐에 장기 집권의 비결 같은 건 안 나옵니다. 그저 그가 이 일을 즐겁게 여긴다는 것 정도는 알겠더군요.
이 작품이 제게 남달랐던 이유는 더 있습니다. <시사IN>도 곧 지령 1000호(매주 1권씩 잡지 1000권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번 주에 제작한 잡지가 지령 992호입니다)와 창간 20주년을 맞습니다. 오는 11월 지령 1000호, 내년에 창간 20주년입니다.
1000호와 2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점에 편집국장 일을 맡게 된 것이 행운일까요, 아닐까요. 제 ‘선임’ 편집국장인 변진경 기자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격변 속에서 이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바쳐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때로 안쓰러웠고, 때로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뿐인가요. 문정우, 남문희, 김은남, 이숙이, 고제규, 이종태, 차형석 등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역대 편집국장들이 그 책무를 훌륭하게 해냈기에 <시사IN>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명심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 그 힘은 독자님의 존재였습니다. 글을 읽고,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혹은 읽지 않고 집 한편에 <시사IN>을 쌓아두면서도 응원의 마음을 거두지 않는 독자님이 있었기에 1000호와 20주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1000호와 내년 20주년을 맞아 저희는 관련 기획과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편집국을 비롯한 <시사IN> 구성원 전체가 힘을 합쳐 여는 한바탕 잔치가 될 겁니다. 특히 독자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열기 위해 골똘히 궁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기획과 행사를 해보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제게 편지(dodash@sisain.co.kr)를 주세요!
혹독한 계절을 견디고, 마침내 가을이 왔습니다. 맛있는 것 많이 드시면서 찬란한 계절을 만끽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