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더욱 희한했습니다. 뉴스로 얼굴을 익혔던 영국 총리가 의장석 기준 오른쪽에 앉아 있는 걸로 보아, 그쪽이 영국 보수당, 맞은편이 노동당 의원들인 것 같았습니다. 의원들은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나와야 발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나와 발언을 하는데, 마이크 앞에 선 전투적인 자세며 상대방을 쏘아붙이는 빠른 말투에 위협적인 손짓까지, 국회의 점잖은 토론이라기보다는 흡사 ‘랩 배틀’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뒤에 앉은 의원들은 환호와 야유를 번갈아 하며 발언에 나선 같은 당 의원의 기세를 올려주었고요.
발언이 끝나면 맞은편에 앉은 상대당 의원 중 상당수가 벌떡 일어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게 대체 무슨 행동인가, 앞선 발언에 대한 항의의 표시인가’ 싶었는데 계속 지켜보니 의장에게 발언권을 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었더라고요. 의원들의 발언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 중에 의장이 지목을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의장이 다음 발언자를 지목할 때 말하는 방식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우리식으로 바꿔보자면 이쯤이 될 것 같습니다. “충남 아산에서 온, 달리기로 명성이 자자한.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친애하는 ○○○ 의원!” 어딘가 괴팍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인상을 풍기던 당시 하원의장의 스타일인지, 영국 의회 전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원들이 속사포 랩처럼 발언을 뱉어내는 데다 제 영어 실력도 신통치 않아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날 꽤 한참 동안 디베이트를 지켜보았습니다. 양 진영 의원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맵고 뜨겁게 말의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전쟁이나 폭력 같은 물리적 충돌을 ‘말의 싸움’으로 대체한 제도가 ‘의회’라는 정치학의 개념이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도 했고요. 수사학이 정치학의 기본 과목 중 하나로 대우받은 이유도 슬며시 이해가 되었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도 매일같이 말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때로는 합의와 조정으로, 또 때로는 대결과 경합으로 풀어나가도록 고안된 공간이 국회니까요. 그러니 ‘의원들끼리 허구한 날 싸우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정말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싸움의 질’ 입니다. 여야 의원들은 싸우되 질 좋은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한국 국회는 과거 육탄전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동물 국회’라는 오명은 상당 부분 씻겼습니다. 그러나 몸싸움이 없어졌다고 ‘말싸움의 질’이 저절로 높아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도리어 토론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꽤나 자주 듣습니다.
국회에 출입하며 기이한 형태의 싸움을 종종 목격합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나 혼자만의 싸움’ 정도 될까요. 분명히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언성을 높이며 분노에 찬 발언을 쏟아내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칼끝도 무디고 알맹이도 부실합니다. 상대당 의원에게 유효타를 입히지도 못하고, 정부 부처 관료에게 의미있는 답변을 얻어내지도 못합니다. 애당초 답변을 들을 생각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요. 이 기이한 ‘혼자만의 싸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저는 ‘쇼츠’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30초 내외로 임팩트 있는 장면만을 잘라서 올리는 짧은 영상 말이지요. 이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상임위원 수만큼 스마트폰을 들고 의원을 찍는 보좌진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의원의 의정활동을 기록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일은 의원실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30초짜리 쇼츠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 열광과 후원을 불러오는 것이 의정활동의 중심이 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정활동의 내용이 부실해질뿐더러, 질 좋은 말싸움 즉 토론이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도 해치게 되겠지요. 영상 제작 인력을 늘리기 위해 정책 보좌진을 내보낸 의원실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제가 정치팀에 오면서 발제 메모장 상단에 적어놓은 아이템입니다. 충분히 성숙시키지 못해 아직은 기사를 쓰지 못했지만, 유튜브가 의회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국회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과정에서 훼손된 것은 없는지 따져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0월이면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옵니다. 스마트폰 앵글을 의식하며 ‘나 혼자만의 싸움’에 몰두하는 의원들을 유심히 지켜보려 합니다.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생각보다 티가 팍팍 난답니다. 독자분들도 그런 의원이 눈에 띈다면 제게 꼭 알려주세요. 기획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까지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시사IN>과 계속 동행해주시기도 바라고요 ^^)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