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사진팀 박미소입니다. 전기장판을 켤까 말까 고민이 되는 날씨라니, 시간이 무섭도록 빨리 흘러갑니다. 후다닥 지나간 시간들에 무엇이 있었던가 되돌아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네팔의 마호타리에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 8월 중순에 개인적으로 봉사차 다녀왔는데요. 마호타리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8시간이 걸리는 곳입니다.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꼬부랑 산길과 엉덩방아를 찧으며 여러 차례 소리를 지르게 되는 비포장도로, 지나가는 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가를 거니는 원숭이 가족을 지나 도착한 곳. 마호타리에는 카스트제도 아래 ‘달리트’라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살고 있습니다. 달리트는 조선의 백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네팔은 카스트제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헌법에도 카스트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계급의식으로 인해 차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는 동네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다른 계급의 민족이 사는데요. 달리트는 그곳에서 장사도 하지 못하고, 그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삽니다.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 150여 명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체능 수업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요. 저희가 영어로 말하면 네팔어로 통역해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 했는데, 세상에. 네팔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보다는 ‘에이 에이!’ 같은 의성어로 소리를 지르고, 앉아야 할 때는 앉는 모습을 보여주는 보디랭귀지로 모든 걸 해나갔습니다. 연을 만들 때 스카치테이프와 가위를 처음 써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당황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처음 배운 것이라도 마치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아이들에게 놀라며, 재능의 영역이 분명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다 만든 연을 들고 신기해하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표정에 제 마음이 매우 환해지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보다는 ‘그냥 신나게 잘 놀고, 몸을 낮추어 눈을 맞추고, 많이 안아줘야겠다, 사랑을 많이 주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요. 오히려 제가 그들로부터 사랑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중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30명이 한 팀이 되어 ‘둥글게 둥글게’를 시작하려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있었어요.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자기 손을 내밀지 않고, 자신의 허리춤만 한 키의 꼬마 아이 손을 제 손에 쥐여줬습니다. 그중 가장 작은 아이를 선생님이 챙겨달라는 의미였겠지요. 작고 조그만 손을 건네던 또 다른 작은 손길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네팔에 머물면서, 그 외에도 감각으로 새겨진 것들이 있는데요. 이를테면 씻을 때,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기 전에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물을 부으면 덜 차갑게 느껴진다는 것, 수많은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지르기보다 오히려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 ‘쉿’ 조용히 이야기하면 더 집중한다는 것 등.
같은 시간 아래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곳에서 어쩌면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머리로 얻는 지식보다는 몸으로 얻어낸 지혜를, 강자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는 마음을 앞으로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님, 연말이 곧 다가오네요. 올 한 해, 님이 일상에서 길어 올린 지혜와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