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문준영 기자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996호부터 실린 ‘한국이 빌려 쓴 청춘’ 기사를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세 나라에서 포착한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기사가 무려 3주 연속 지면에 실렸습니다. 반복적인 주제에 피로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획을 정리하며 4년 전 여름 이야기를 잠깐 꺼내볼까 합니다. 2022년 여름, 대학을 막 졸업한 저는 우연한 기회로 경기도의 한 식당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연예인의 사인 종이가 벽 한 면을 채울 만큼 유명한 맛집이었는데요. 식당이 산골짜기에 있어서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알바생 몇 명은 식당 밖에 있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잤습니다. 컨테이너라고 하지만 외관만 거부감이 들 뿐, 방 안에는 에어컨도 달려 있어 (제 기준) 나름 시원하고 안락했습니다. 밤이 오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을 구경하던 게 소소한 힐링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제 옆방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빙을 맡는 동안, 그들은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했습니다. 저 같은 단기 알바생이 아니었죠. 식사를 교대로 해야 했기에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추측하건대 이 가운데 미등록 신분으로 일하는 분도 계신 듯했습니다.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사장님은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그들에게 “고생한다”라며 수박과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식혜를 종종 챙겨주셨습니다.
당시 제가 잠시 머물던 현장은 사실 선악 구도로 나뉘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시원했던 컨테이너, 일은 고되지만 정이 넘치던 사장님. 어느 하나가 부당하다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서로의 수요가 타협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무던한 곳이었죠.
하지만 모든 곳이 다 그렇진 않았나 봅니다. ‘한국이 빌려 쓴 청춘’ 기획을 준비하며 만난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다른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 이주노동자는 편도 12시간을 달려 네팔 카트만두로 찾아와 이은기 기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체류 기간이 끝난 뒤에도 “남아달라”는 사장님의 부탁으로 일을 계속 했는데요.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장님은 그를 미등록 노동자로 신고했습니다. 제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 여성은 삼촌이라 부를 만큼 친하던 이웃이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도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 문제를 꺼내면, 냉소적인 시선이 유독 쉽게 따라붙는 듯합니다. “모든 현장이 다 나쁜 건 아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니냐” “한국에서 돈 버는 게 이득이니까 오는 게 아니냐”라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한국행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기사에도 담겼지만, 안전하게 일하다 큰 성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분명 많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빈틈에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의 구조 속에서 이들의 운명이 ‘어떤 사업장에서 일하게 되는가’라는 운에 달려 있습니다. 운명이 운에 달려 있는 제도를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동의한 건 한국에서의 노동이지 임금 체불을, 사업주의 협박을, 산업재해를,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4년 전 제가 잠시 머물렀던 곳처럼 큰 악의가 없는 곳이 더 많을 거라 믿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대다수는 돈을 잘 벌어서 돌아가지 않느냐”라는 평안한 말로 서글픈 사연들을 방관하기엔, 한국에서 상처를 입은 그들에게 진 빚이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