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재미있는 제목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부제:헛소리 까발리기의 기술)〉와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입니다. 정치인, 언론, 대기업 등이 어떤 개소리와 헛소리(개·헛소리)로 시민들을 속이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합니다.
선거 기간엔 단연 정치인들이 숱한 개·헛소리를 늘어놓을 것인데, 이 자체엔 어느 정도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들의 ‘자기 이익 극대화’가 사회 원리인 나라에서 유독 정치인들에게만 ‘조국과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고결성’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개·헛소리가 반드시 사회적 해악으로 귀결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그리 정교하지 않은 담론들이 해당 사회의 억눌린 목소리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전선(戰線)의 안팎으로 시민들은 ‘갈라 세워’지고, 이에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해당 사회는 개선되거나 퇴보합니다. 예컨대 19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권, 2000년대 이후의 페미니즘은 성평등, 지금의 20대론은 젊은이들의 처지를 사회적 공론의 주제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하나의 담론이 세상만사를 모두 설명하고 괜찮은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긴 힘든데, 그 설파자들이 자기 담론의 전능성을 너무 믿으려 하기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긴 합니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말마따나 담론은 자기 분수를 알고 절도(節度)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갈라 세워서 문제’라지만, ‘갈라 세우기’야말로 정치의 본령인지도 모릅니다. 억눌려 지워진 목소리들을 드러내 갈등의 존재를 사실로 확립해야, 그 부문에 자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제도적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가 잘 작동해야 각 개인들은 국민으로 통합됩니다. 문제는, ‘갈라 세우기’ 자체가 아니라 이상한 증오를 양산하는 ‘엉뚱한 갈라 세우기’입니다. 시민들을 친중/반중, 친일/반일, 남성/여성, 이주노동자/한국 국민으로 갈라쳐서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유감스럽습니다.
〈시사IN〉 제752호는 유력 후보들이 GTX 증설, 경제성장, 산업정책, 방역, 병역, 농업, 동물정책 등에서 내놓은 공약들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어떤 후보가 개·헛소리를 하고 있으며, 그 개·헛소리들 중에서도 어떤 것이 그나마 ‘생산적인 갈라 세우기’이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 갈등 부추기기’인지 확인하실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