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가 무대인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거의 편집국장이 등장하더군요. 주연은 아니고 조연인데, 주로 악당이거나 약한 사람입니다. ‘악당 국장’은 정치·경제 권력 및 그들과 결탁한 사주(경영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기자들을 억압합니다. ‘약한 국장’은 권력과 공익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한쪽으로 입장을 굳힙니다.
저는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세상에 저런 일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사IN〉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편집국장 직무를 수행해온 지난 2년여 동안, 단 한 번도 외부 권력의 압박으로 인해 게재한 기사를 내리거나 논조를 바꾸거나 심지어 이런 문제로 고민해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편집권 독립이 여전히 주요 이슈인 한국 언론계에서 저는 굉장히 행복한 편집국장이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일 무서운 대상은 정치·경제 권력이 아니라 독자님들이었습니다. 특히 기사의 소재나 논조에 대해 항의하시는 경우, 저로서는 그렇게 난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편집국장이라 하더라도 기자에게 어떤 소재는 다루지 말라거나 논조를 바꾸라고 명령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편집권 독립’의 요체는, 결국, 기자에게 ‘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편집국장의 권한이 기자들의 ‘쓸 자유’를 가로막는 쪽으로 행사된다면, 편집권 독립이라는 공적 가치가 흔들립니다. 외부 권력으로서는 편집국장 한 사람만 포섭하면 해당 매체의 논조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될 터이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저는 〈시사IN〉 편집국의 현 시스템이 편집권 독립과 공익에 이롭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독자님들의 항의는, 저희 기자들이 충분히 귀를 열지 못해서 ‘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거나, 이에 대한 저의 ‘데스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저희 편집국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문제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이번 호(제764호)를 만드는 것으로 저의 편집국장 임기가 끝납니다. 정치·문화·경제·사회 등 다양한 부문을 취재하고, 편집 업무를 총괄했으며, 독자와 만나는 행사에서 여러 차례 〈시사IN〉의 얼굴을 맡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차형석 기자가 제765호부터 편집국장을 맡게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이 지면에 실리는 저의 설익은 이야기들을 참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