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동안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고 임보라 목사의 흔적을 좇았습니다. 작고한 이의 일상이 찍힌 사진, 그가 쓴 글, 발언 영상들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니 생전에 친분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어느 때는 묘한 그리움이 몰려왔습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며 ‘수배자’가 되었던 시절에 쓴 글, 그가 몸담았던 섬돌향린교회 게시판에 ‘초록나무’라는 닉네임으로 쓴 회의록 혹은 소소한 댓글들을 보며 그가 살아 있다면 긴 담소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웃음이 걸린 눈으로 느리게 말하는 모습이 오래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가량 지난 3월11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했습니다. 단상 위에서 그와의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 추모의 말들이 이어질 때마다 웃음과 울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아는 임보라를 만난 이들이 반갑고 그리워서 자꾸 웃었고, 더는 그와 시간을 쌓아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마를 새 없이 눈가가 젖었습니다. 울음과 웃음, 얼핏 보면 너무나 달라 보이는 두 행위가 여기저기서 뒤엉키며 공존하는 현장은 왠지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애도란 마음속 울퉁불퉁한 감정들이 제멋대로 터져 나올 때 그것을 억지로 욱여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의 추모제가 끝나고 한자리에 모여 있던 마음들이 저마다의 귀갓길로 흩어지는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조금 더 힘내기를, 작게 주먹을 쥐고 응원하였습니다.
며칠 뒤 만난 자캐오 길찾는교회 신부는 임보라 목사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섬돌향린교회 김하나 전도사는 임 목사가 있던 자리에 우리가 있겠다며 “어딜 가나 깃발을 볼 수 있게끔 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천 배, 만 배 더 용기를 내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저는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모릅니다만 그들의 ‘임보라 목사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것은 명백히 존재하는 실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런 생각 끝에 제가 아주 좋아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에 관한 소설 속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에게는 세 아들이 있지요. 첫째는 드미트리, 둘째는 이반, 셋째는 알료샤입니다. 세 형제는 모두 직업도, 성격도, 상징하는 인간성도 다릅니다. 책의 후반에는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는 드미트리가 나옵니다. 그는 막내 알료샤에게 묻습니다. “너는 내가 살인을 했다고 믿는 거냐? 너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오직 진실만을 말해다오.”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절박하게 말하는 드미트리의 부탁에 알료샤는 떨리는 목소리로 ‘서약이라도 하듯이 오른손을 번쩍 쳐들고’ 말합니다. “나는 단 한순간도 형님이 살인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드미트리는 말합니다. “이제 너는 나를 부활시킨 거야…. 자, 어서, 어서 가! 넌 내게 내일을 대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거란다. 자, 어서 가, 그리고 이반을 사랑하거라!”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간 동생 이반을 사랑하라는 말을 하며 드미트리는 알료샤와 헤어집니다. 알료샤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밖으로” 나와 이반을 찾아갑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진실한 말에 드미트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형제를 사랑해달라고 말하는 용기를 냅니다. 아마 자신 역시 그를 기꺼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곤궁 속에 있는 이의 곁에 진실되게 함께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를 정말로 살리는 일이라고 믿게 되는 장면입니다. 아마 그렇게 늘 낮은 곳에 먼저 가 있었던 임보라 목사는 많은 상처들을 다시 회복시키셨을 것입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흔적을 좇은 일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손에 잡힐 듯 현현한 존재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곁의 초록나무’라는, 아련하고 푸근한 이 말을 마음속에 한 번 더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