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선배가 물었습니다. “너는 남들한테 무엇을 전문으로 다룬다고 설명할래?” ‘열린 잡탕주의’를 인생의 모토로 살아온 저로서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죠. 전공은 경제학과 사회학, 가장 오래 몸담은 부서는 정치팀, 정의로운 세상과 일신의 안위를 동시에 고민하는 좀생이.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삶이라 생각했거든요. 심지어 음악 취향까지 그렇습니다. 출근길에는 뉴진스를 듣다가도, 진 빠진 퇴근길에는 울프 앨리스(Wolf Alice) 따위를 찾아 들으며 침울하게 돌아가거든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그 선배 앞에서 나지막하게 “도시요”라고 답한 게 기억납니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아니고 도시라니. 이 얼마나 한가한 소립니까?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사회팀과 경제팀, 정치팀을 거쳐서 다시 사회팀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그동안 쓴 기사를 보니, 그 궤적이 크게 한 주제로 압축되더군요. 공간과 사람. 저는 특정 사건을 공간 단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이 컸습니다. 공간에서 발견되는 밀도의 문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죠. 밀도가 너무 높아서 힘없는 사람들이 밀려나거나, 사람들이 획득하고 싶은 공간이 너무 제한적이라 그 공간의 밀도가 높아지거나. 사람들의 이동이 수반되는 각종 사회현상,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이슈에 제가 그동안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시사IN〉 기자들은 각자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후보별 정책을 비교했는데요. 이 기획에서 저는 여야 후보 간의 부동산·교통·인구 문제를 담당했답니다. 여기에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이슈가 모두 뒤엉켰고요.
제가 술자리에서 자신 있게 ‘썰’을 풀 수 있는 주제도 공간과 연관됩니다. 바로 수도권 집중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도 남부권이 향후 비수도권 지역 인구를 흡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갖고 있어요. 실제로 과거에는 전국 곳곳에 위치했던 각종 제조업 공장까지 이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미래가 과연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수도권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버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전세계약 기간이 끝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2년에 한 번씩 서울에 호되게 당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때마다 준엄한 서울시께서 “떼끼 요놈아. 그 돈으로 어딜 서울시민이 되려 하느냐”라며 혼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흘러 흘러 이런 질문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빡빡한데 결혼은 왜 해야 하지? 이런 밀도에, 이런 다급한 현실에 왜 결혼을 해야 할까. 입은 왜 늘리나. 딱히 불편한 것도, 누구랑 같이 산다고 이득이 되는 것도 없는데(심지어 저는 가사 노동을 잘한답니다!)… 이런 질문이 이어지다 문득 주변에서 이런 말이 들리더군요. “저놈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하게 생겼다”라고요.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후반 내국인 남성에게 저 타박이 들릴 정도라면,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한탄이나 질책 또는 혐오는 얼마나 거셀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사회가 결혼하지 않으려는 인구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알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사IN〉 제808호 커버스토리 ‘출산율 0.78 시대 연애·결혼 리포트’는 그렇게 기획하게 됐습니다. 한 사회가 자연스러운 연애 감정까지 막을 지경이라면, 거기에는 커다란 불안감과 자신감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죠.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나서 독자분들의 피드백에 공통적인 지적이 하나 있더군요. 바로 ‘부모’였습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독자분들의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지금의 합계출산율을 만들어낸 30대의 공통된 경험은 무엇일까. 대략 1984~1994년생 정도가 되겠죠? 인터넷이라는 걸 처음 접했을 것이고, 지금은 대중화된 인강 같은 사교육을 접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들이 청소년일 때 키웠던 부모들은 무슨 경험을 했을까 생각해보았어요. 이 시기에 접하는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갈등은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치잖아요? 곰곰이 따져보니 그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IMF.
정확히는 IMF로 망가진 삶을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식을 키운 게 우리 부모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진짜 어마어마한 과업이죠. 저는 지금도 “와 그때 울 엄니는 어떻게 자식 안 버리고 버텼냐”라고 농담조로 얘기합니다. 그러니 황폐화되고 각자도생이 ‘국룰’이었던 시기에 우리는 부모와 공생하며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그래서 이번 설문에서 “나의 부모님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이들이 많다는 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저도 제 자식은 꿈꾸기 어렵지만, 적어도 저희 부모님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시죠? 부모라는 존재는, 특히 기성 질서에 성실히 적응하며 살아온 부모는 애증의 존재라는 걸요. 이 오만 가지 감정, 그리고 불안감이 어쩌면 합계출산율이라는 숫자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직관’이라는 허울을 쓴 제 뇌피셜에 불과하지만요.
저는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삶, 아이 낳지 않는 삶을 젊은 세대만의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은퇴를 앞둔 60대 베이비부머들의 삶도, 어느 정도 지금의 모습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자원을 노인에게 배분할 것이냐, 아니면 젊은 세대에게 배분할 것이냐고 묻는 것은 지엽적인 접근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가 ‘저 노인들은 받을 만큼 받아먹지 않았냐’라고 따져 물어서도 안 되겠죠. 저출생은 단순히 2030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로섬 게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인간의 이동으로, 인간의 밀도와 인구문제까지 이어집니다. 어쩌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주제들을 넘나들면서 제가 조금은 깊은 사람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하긴, 딱히 깊어질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기자가 어떻게 전문가만큼 깊어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저의 이런 궤적들이 독자분들의 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정치·경제·사회라는 카테고리로 포섭되지 않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 보면, 독자분들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