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IN> 김은지 기자입니다.
뉴스레터에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눈 밝은 독자님이시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지난 3월 개편 이후부터 <시사IN>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이들이 가나다순으로 독자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또한 더욱 뉴스레터의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취재기자가 아닌 내부 구성원들이 독자님들께 건네는 이야기는 뭘까 하는 소소한 기대감으로 매주 토요일 메일함을 열어봅니다. 이 편지를 보실 독자님들께도 저희가 마련한 작은 재미가 잘 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독자분들께만 제공되는 내용이니, 좀 더 편하게 최근 저의 취재와 고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에 관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썼습니다. 일본 빠진 강제동원 해법(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 제시, 일본의 역사 교과서 개정과 같은 후폭풍으로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과거는 봉인되었고 미래는 봉쇄되었다”),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터진 미국의 도감청 의혹(도감청 의혹이 던진 질문 ‘동맹이란 무엇인가?’) 등 숨 가쁘게 관련 이슈들을 쫓았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전반적인 외교 전략에 대한 평가와 충고를 담은 문정인 교수 인터뷰(문정인의 충고 “한국과 미국의 이익이 늘 일치하지 않는다”)를 했습니다. 이러한 기사를 쓰는 제 질문의 핵심은 ‘왜?’였습니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는 거칠고 전략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남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반일-친일의 구도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식민사관의 요체는 사회진화론이다. 암암리에 이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 앞에서는 일단 스스로 접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 약자였던 적도 없고, 약자의 편에 서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가진 사고다. 이런 행태는 이미 국내 정치에서 많이 보여줬다.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을 대하는 태도다. 총체적 인권 무시의 연장선에 대일 외교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강약약강’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태도입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말인데요. 저는 이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굴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더 나아가 대미 외교 행태가 그 자체로 이례적이거나 ‘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국내 정치에서 보여왔던 모습의 연장으로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행동한다는 지적입니다. 남기정 교수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윤석열 정부에서 보듬어지지 않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강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분석과도 잘 이어지는 듯합니다.
흔히 각자도생의 시절이라고 합니다. ‘강약약강’의 서사에도 변명 혹은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겁니다. 일단 생존이 중요하다는 강변일 터입니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과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강약약강’으로 살아남기에 대해선 더욱 그렇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리는 좋은 공동체는 그런 생각에 맞서는 곳입니다. 생존을 목적으로 약자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며, 누구를 위한 생존이냐고 물어보는 것이랄까요.
동시에 이는 저널리즘의 역할이란 생각이 듭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강강약약’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시사IN>의 지향점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스쿨존을 걷는 아이, 울산에 정착한 아프간 난민, 이동권 운동을 하는 장애인 등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각종 권력의 말과 행동의 이면을 주시했습니다.
늘 만족스러우시진 않겠지만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오늘 제 편지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늘 감사드린다’입니다. 덕분에 힘을 내고, 덕분에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평안한 주말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