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감이 빠릅니다. <시사IN>은 매주 목요일 마감을 하는데 저는 보통 수요일 늦은 오전, 더 빠르면 화요일에도 합니다. 다른 기자들의 마감 속도를 의식하고 체크하진 않지만 제작팀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제가 1등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합병호 때는 일주일 일찍 원고를 넘겼습니다. 국장이 “너는 왜 헷갈리게 다음 주 원고를 벌써 넘겼냐”라고 했습니다. 물론 흐뭇한 표정으로요. 입사한 이후로 그런 표정은 처음 봤습니다.
마감을 일찍 하려면 주말을 반납해야 합니다. 저는 손이 빠르지도 않고 최대한 쉽게, 풀어서 쓰려다 보니 기사를 길게 쓰는 버릇이 있거든요(기사 분량에 대해선 독자님들 사이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의견 보내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등 떠밀려 속도를 내는 건 아닙니다. 선배, 팀장, 국장 누구도 마감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저만의 루틴입니다. 꼼꼼한 편이 아니라서 쫓기듯 마감하면 크고 작은 실수들이 나오더라고요. 한번 미루면 계속 신경 쓰이기도 하고, 여유를 가지고 다음 취재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늘 내일의 저에게 맡기고 쉬고 싶어 하는 오늘의 저와 싸우면서 마감합니다.
저의 루틴대로라면, 지금 읽고 계시는 뉴스레터 역시 수요일 또는 화요일에 마무리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목요일 오후 11시30분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겁니다! 제 차례인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게 1차적 이유이지만 늦게 쓰고 있다는 걸 뻔뻔하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제법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하나 있거든요.
지난주부터 오랜만에 손이 많이 가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서 대통령의 이사 비용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기도 하고, 300쪽이 넘는 주가조작 사건 판결문과 3년 치 실제 주식 거래 내역을 일일이 대조해보기도 했지만 이번 기사가 단순 작업량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챗GPT에게도 도움을 요청해봤는데, 자기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하나하나 손으로 잔꾀도 부리지 못하고 작업 중입니다. 옆자리에 앉은 이은기 기자가 도와주겠다고 팔 걷어붙였는데, 잠깐 부탁했다가 너무 미안해서 제가 하겠다고 다시 가져왔습니다. 작업의 핵심 키워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누구도 이렇게까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해보니 왜들 안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마감합니다(제819호). 보도 전이기도 하고 아직 이 데이터들을 정확히 어떻게 쓸지 확정하지 못해서 독자님들께 내용을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작은 힌트 하나를 드리면, 이번 기사를 통해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법을 국정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었는지 한눈에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행히 작업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지점들이 보입니다. 독자님들께서도 금방 알아보실 수 있도록 정리 잘 해보겠습니다.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저의 첫 번째 뉴스레터에서 약속을 하나 한 게 있습니다. 다음에 인사드릴 때는 특종 기사를 가지고 온다고 했거든요. 못 가져왔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변함없이 저와 <시사IN>을 아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뉴스레터까지 순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마감 1등 자랑이나 변명거리 대신 꼭 특종을 가져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