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변진경 기자입니다.
독자님에게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작은 죄책감에 대해 고백을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약간 ‘피로한’ 이야기입니다. 이 편지가 토요일 낮에 독자님에게 배달되는 걸로 알고 있어서 다소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상쾌한 주말 낮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라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물안궁’ 제 죄책감 이야기를 한번 늘어놔보겠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새벽배송 온 택배 상자를 뜯다가 또 ‘현타’가 왔습니다. 가족들 식사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전날 밤에 잔뜩 주문했거든요. 여느 때처럼 상자를 뜯고 비닐 포장지를 벗기고 플라스틱 통 안에 담긴 내용물들을 정리했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바닥에 쌓인 포장 쓰레기만 한아름이더라고요. 한숨이 나왔습니다.
적어도 2~3일에 한 번씩은 이 일을 반복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먹을 우유와 달걀이 떨어지지 않고, 화장실에 휴지와 치약과 칫솔을 갈고, 빈 세제와 샴푸통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필요해서 하긴 하는데, 할 때마다 죄책감과 함께 피곤함이 진하게 밀려옵니다. 끝없이 쌓이는 일회용 포장 쓰레기, 취재하면서 더 상세히 알게 된 배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사라져가는 지역 상권… 이런 것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 12시가 넘기 전 부랴부랴 내일 필요한 물건들을 또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장바구니 총액이 무료 배송 금액에 미달하면,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며칠 뒤엔 분명히 다급히 필요한 물품이 뭘지 머리를 쥐어짜다가 밤 12시(새벽배송 마감 시간)를 넘겨서 내일 꼭 필요한 먹을거리나 생필품, 아이들 학교 준비물을 놓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럴 때면 괜히 혼자 부아가 치밀어서 밤잠도 설치곤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누칼협’이라고 하죠.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이런 소비활동을 하냐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겠지요. 플라스틱 포장이 싫으면 장바구니 들고 재래시장에 가면 되고, 배송 노동자들의 밤샘 노동이 미안하면 새벽 배송을 시키지 말든가, 지역 상권이 걱정되면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 대신 동네 슈퍼를 이용하면 되지 않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바쁜 일상 와중에도 품을 들여 그렇게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시간 빈곤’ 워킹맘으로 허덕이며 살아서라는 변명도 그리 당당하게 하진 못하겠습니다. 저보다 더 바쁘고 힘들게 지내시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다만 그래도 감히 몇 가지 변명을 하자면, 노력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일부러 장바구니 들고 재래시장을 찾고, 동네 빵집·문방구·정육점도 자주 들러보려고 시도해본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서 재래시장이 제대로 살아남아 있는 곳이 몇 군데 되지 않더라고요. 특히 퇴근 후 저녁에 가면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요. 그나마 괜찮은 시장을 찾았는데 재개발 지구에 포함되면서 어느 날 싹 철거돼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동네 문방구, 작은 슈퍼마켓,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아닌) 빵집들도 이미 문 닫은 지 오래입니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 ‘문구점’ 간판이 반가워서 달려갔더니만 오래전 폐업하고 간판만 남은 곳이어서 허탈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런 ‘쇠락하는 동네 상권’ 이야기를 5~10년 전까지는 취재로라도 종종 다뤘는데, 이제는 워낙 이미 다 망가진 상태라서 기삿거리가 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 세상이라고 하죠. 다양한 상품들이 즐비하고 소비자들은 가격 검색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가성비’를 따지며 물건을 사는 시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소비자로서의 제 선택권이 더 좁아진 기분이 들까요. 물건을 고르고 사고 제 손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왜 점점 더 피로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연필 한 자루를 사려고 해도 온라인 쇼핑몰 앱을 열어서 할인쿠폰과 무료 배송 최소 기준액을 맞추려고 1시간 동안 스마트폰과 씨름을 하거나,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차를 끌고 멀리 대형마트까지 가서 긴 주차장 줄을 견딘 후 지친 몸으로 카트를 밀며 장을 봐야 하는 이 소비 환경이 영 몸과 마음에 편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했으니 적응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다들 저처럼 찜찜하고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대안이 없으니 그저 견디는 걸까요. 경제는 분명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고 하던데요. 경제의 대동맥은 굵고 튼튼해졌는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만, 골목 구석구석을 흐르던 실핏줄은 온통 메말라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 실핏줄에 의지해 생업을 이어가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모두 배달 노동자나 대형마트 계산원이 되었을까요?(대형마트 계산대는 또 요새 거의 무인화가 되어가던데요.) 실핏줄 없이도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걸까요?
장보기 환경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 생태계든 언론 생태계든, 작고 고유한 것들이 점점 살아남기 힘든 세상입니다. 저희 <시사IN> 같은 작은 종이 매체 언론사도 마찬가지고요. 점점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고 크고 단일하고 깔끔하고 명쾌한 시스템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가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묻고 싶어요.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겠냐고요. 오늘도 플라스틱 용기들에 둘러싸여 새벽에 배송될 내일의 식료품과 생필품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잔뜩 넣으면서 자괴감 한 스푼, 죄책감 한 스푼을 함께 담습니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그래도 언젠가는 어떤 변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미약한 정신 승리적 희망도 반 스푼, 마지막에 추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