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IN> 사진팀 신선영 기자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날의 아침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서울시에 경계경보가 발령됐기 때문입니다.
오전 6시41분, 온 동네를 깨우는 경보 사이렌에 잠이 깼습니다. 이어 대피하라는 서울시의 위급재난 문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곧장 행정안전부에서 만든 ‘안전디딤돌’ 앱을 열었습니다. 가까운 대피소를 찾기 위해서요. 지난 5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6년 만에 재개된 ‘공습 대비 민방위훈련’을 취재하면서 설치해둔 앱이었습니다(제819호 포토IN "6년 만에 부활한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
그런데 대피소 검색은커녕 앱 실행도 안 되더군요. 생방송 뉴스를 켰습니다. 평화롭게 광고만 나오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서울시의 경계경보가 ‘오발령’임을 알리는 행정안전부의 재난 문자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백령도와 일본 오키나와에는 대피 명령이 떨어졌으니 긴급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지만,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서울시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행정안전부를 보고 있자니 더 혼란스럽고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사실 뉴스레터에서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주 제가 받은 초콜릿과 홍삼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포토IN’ 취재로 강동구 이동노동자 지원센터에 다녀왔습니다(제820호 포토IN "노동정책 예산 줄었다고 폐쇄가 답인가"). 오후 4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라 이용자 대부분이 대리운전 기사였습니다. 쉼터는 구청장이 바뀐 후 예산 문제로 문을 닫을 상황이었습니다.
5월19일 밤과 20일 새벽, 22일 밤과 23일 새벽을 강동구 센터에서 보냈습니다. 센터를 방문한 첫날,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시던 대리운전 기사 한 분이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 저에게 건넸습니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역시 제 손에 초콜릿과 각종 홍삼이 가득했습니다. 10년 가까이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고작 이틀 밤을 새우는 저를 걱정하신 겁니다. 이들의 삶을 잠시 들여다본 것으로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 삶이 평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복지센터는 낮에 방문할 수 있으며, 아프면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일상 말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배스킨라빈스(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가 첫 직장인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다양한 직군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콜센터 상담사와 우버(Uber) 드라이버를 전전하다 파산한 여성 노동자가 던진 말이었습니다. 휴가와 보너스가 주어지는 ‘좋은 회사’에 가까스로 취직한 그녀는 “인생에 안전장치 같은 건 없거든요”라고 말합니다. 그녀 옆에 앉은 젊은 노동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국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안전장치 없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제가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어느 순간 미끄러진 노동자들이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이 뉴스레터가 발송될 때쯤이면 6월 첫 주말이 되겠네요. <시사IN>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이 지금 이 사회에서 ‘보고 싶은’ 장면은 무엇인지 가끔 궁금합니다. 제가 보는 울타리 너머 무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 풍경, 이야기 등 다 괜찮습니다. 제보해주시면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보고 기록하겠습니다. 그럼 <시사IN> 이번 호와 함께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