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발 이후 2년여 동안 〈시사IN〉 편집국은 제법 잘 버텨왔습니다. 자가 격리하는 구성원은 나왔지만, 모두가 신기하리만치 확진은 피해가더군요. 오미크론도 잘 넘어갈 줄 알았습니다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습니다. 한산한 편집국 사무실에서 마감 원고들을 읽으며, 인간 세상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확인합니다. 자신 있게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없는 사안들이 몇 가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첫째, ‘오미크론에 대한 대처’입니다. 정부는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 치명률이 꽤 낮은 데다, 일상의 회복이 사회적으로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정부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위드 코로나’의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논란도 불가피하겠지요. ‘편집국의 코로나 전문가’로 통하는 김연희 기자에게 물었는데, 그 역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정부가 ‘곧 정점을 지난다’라는 낙관론에 붙여 위험 정도나 의료체계 부담 같은 정보들을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해주면 좋겠다는군요.
둘째, ‘나쁜 짓을 하는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김인건 독일 통신원의 기고문에 따르면, 독일은 ‘러시아 제재’를 둘러싸고 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끊는 식으로 보복한다면 경제가 몹시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도 여론조사 응답자의 65%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더라도 제재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답니다. 독일 시민에 대한 존경심과 의구심(‘러시아의 보복이 현실화되어도 이 입장이 유지될까’)이 잠시 엇갈렸습니다. 중국, 북한과 인접한 한국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셋째, 김오수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의 사퇴 압박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선출 권력과 검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옳은지 새삼 혼란스러웠습니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을 감안하면, 선출 권력이 검찰을 감독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원리적으로 정당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양측이 상부상조하며 사적 이익을 확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욱이 검찰 조직을 사랑한다는 전직 검찰총장이 선출 권력으로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이런저런 난제들에 실마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독자들께 질문만 퍼붓는 꼴을 보였군요. 이번 대선을 겪고 나니, 언론인이 언론인으로서 말하기 위한 전제, 즉 ‘나는 객관적 사실을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명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