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획취재팀장을 맡고 있는 이오성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해 가을 띄웠던 편지에서 다음 글에서는 ‘고참 기자의 눈으로 본 한국 언론’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약속드렸죠.
혹시 그 이야기를 기다리셨던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후쿠시마 오염수와 원전 문제입니다.
최근에 일본 녹색당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6월8~11일 세계 녹색당 총회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인천 송도에서 열렸기 때문이었죠. 녹색당의 본산이라 할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의 녹색당 정치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 참관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6월10일 토요일 한국 녹색당 지도부와 일본 녹색당 게이코 오카타 공동대표 등이 함께한 간담회에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화제는 단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였죠. 한·일 녹색당은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태평양 지역 시민의 건강과 바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습니다. 특히 핵폐기물로부터 태평양 생태계의 안전을 지키자는 일본 녹색당의 제안이 세계 녹색당 대회의 공식 결의안으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한·일 녹색당 간담회에서 제가 귀기울인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었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시찰단을 파견하는 등 들끓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한국의 반응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특히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는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한국도 어차피 원전 돌려서 전기를 쓰는 나라 아니냐.”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일본 녹색당 정치인들도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이런 말은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한국도 방사능 액체 폐기물을 바다에 내보내왔다”라고 말했죠.
물론 이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2011년 사고 이후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쌓여 있는 후쿠시마 원전과 한국 원전을 동격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한국의 원전에서는 세슘이나 스트론튬 같은 매우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죠.
그럼에도 우리나라 역시 원전을 운영하고 그곳으로부터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를 말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원전이 ‘필요악’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넌 뭐가 그렇게 깨끗해?” 하는 유의 반발이 어디서든 나올 수 있는 조건인 거죠. 윤석열 정부가 아예 '원전 생태계 복원'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은 마당에야 일본의 이런 반발 혹은 핑계는 앞으로 더 거세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인가요. 오염수 방류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국내 일부 사람들은 중국의 원전 문제를 걸고 넘어집니다. 중국의 동해안, 즉 한국의 서해 바다 가까이에 밀집한 중국 원전의 오염수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죠. 왜 일본 오염수에만 반발하고, 중국 오염수에는 침묵하느냐는 식입니다. 다분히 반중 정서에 편승한 선전선동입니다만, 솔직히 염려가 되기는 합니다. 원전 55기를 운영 중인 중국은 미국(93기), 프랑스(56기)에 이어 세계 3위의 원전 운영국인데, 대다수가 동해안에 몰려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서해안에 큰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몇 년 전에 본 일본 만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사람 하나둘>이라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일본 총리가 자신의 수호령을 만나게 되면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파벌 구조에 휘둘리며 자신의 정치 철학을 제대로 펴지 못했던 소심한 총리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큰 결단을 내립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원전을 완전 폐기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쉽겠습니까.
기성 정치권과 원전 마피아의 저항은 총리라는 위상을 뒤흔들 만큼 거셌죠. 마침내 그는 인생 최후의 결단을 내리려 후쿠시마로 향합니다. 마지막 내용이 워낙 충격적인 데다 스포일러일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요즘 분위기에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실 독자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작품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출간되었습니다. 대참사를 겪은 일본조차 사후세계의 존재를 빌려서야 원전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을 만큼 현실의 벽은 막막합니다.
2017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선언을 했습니다. 5년 뒤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논란이 되자 이재명 당시 후보는 '감원전'이라고 표현했죠. 저는 그때 원전 논쟁을 보면서 어떤 정치인과 관료는 이렇게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과연 전기를 아껴 쓸 수 있을까? 전기료 상승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곧 한여름이 닥치면 여기저기 전력 수급 문제가 불거질 텐데? 원전에 대한 여론은 또 뒤집어질 거야. 그게 너희, 아니 우리의 한계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그래서 단순히 건강권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원전이라는 인류 공통의 필요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막대한 건설 비용, 그리고 추산하기조차 어려운 안전 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이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원전을 안고 살아갑니다.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울 거라지요? 아마도 올여름에는 원전 오염수에 대한 염려와 함께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인사 삼아 지난겨울 난방비 인상 국면 때 썼던 기사를 링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