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5년 말에 기자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고 잠시 연구소에 몸담기도 했지만 30년 가까이 기자로 살아온 셈이죠. 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운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기자라는 직종이 마음에 듭니다. 보수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기자가 다른 직종보다 상대적으로 꽤 높은 임금을 받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어요. 그러나 기자는 이른바 ‘노동의 소외’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직업입니다. 첫째, 기자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생산물(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 노동의 결과가 ‘내’ 이름을 걸고 시장에 나가는 겁니다. 둘째, 기자의 노동과정은 그 특성상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아무리 엄혹한 관리자(편집국장, 팀장 등)라도 주제 선별, 취재(데이터의 수집 및 정리), 기사 작성에 이르는 기자의 노동과정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이 같은 노동과정의 각 단계가 하나의 지향하에 전개되어야 기사라는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자의 노동은 파편화시켜 분업화하기가 힘듭니다. 예컨대 누구는 기사의 주제만, 누구는 취재만, 누구는 글쓰기만 하는 식으론 기사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결국 기자의 노동 내용은 종합적일 수밖에 없고, ‘기자질’을 하다 보면 이 일이 나름 꽤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직업엔 숙련이라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제가 특별히 아둔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1995년에 그랬던 만큼이나 지금도 기사 쓰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도 기자라는 직업의 즐거움(?)을 나름 누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시사IN>이라는 회사에 몸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직장에서라면 회사가 지옥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시사IN>에 다니는 기자들은 자신의 논지에 반하거나 혹은 양심을 거스르는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지배구조와 사내 문화 때문입니다.
지배구조 측면을 보면, 주주가 편집 방향에 절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일단, <시사IN>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없어요. 더욱이 <시사IN> 직원들의 지분이 굉장히 큽니다.
사내 문화도 그렇습니다. 제가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느낀 점인데, <시사IN> 편집국에서 사실상 가장 유력한 의사결정 기구는 국장보다는 팀장회의입니다. 또한 팀장들은 하나같이 후배 팀원들에게 약합니다. <시사IN>의 현 대표는 정치 전문으로 유명한 이숙이 기자입니다. 그라도 후배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편집국 관련 이야기를 꺼냈다간 질타당합니다. <시사IN> 기자들이 경영 측의 편집권 침해 가능성에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후배 기자들 개개인을 보면 하나같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로서 자긍심이 강합니다. ‘바른 생활’ 스타일이고, 능글능글한 사람이 없습니다. 새로 신입이나 경력을 뽑아도 비슷한 인간들만 들어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전국 언론사들 가운데 <시사IN>만큼 광고국이 고생하는 회사도 없을 것이라는 데 상당한 돈을 걸고 내기에 나설 의향이 있습니다. 편집국이 광고국을 이른바 ‘도와주는’ 경우를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시사IN> 지배구조와 편집국 문화가 언제나 자랑스럽기만 하진 않습니다. 의사결정이 너무 느리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기자들마다 각각인 정치 성향과 사안별 판단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을 정해놓고 일괄적으로 확 몰아치는 편집 방향을 선택하기도 어렵습니다. 유튜브식의 내러티브가 성행하는 요즘 세상에서 조회수와 수익 올리기에 친화적인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못마땅해하는 저도, 정치적 견해가 극단으로 갈리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팩트마저 취사선택하기 일쑤인 사건들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땐 후배들의 기사를 준거로 삼게 됩니다. 같은 회사 동료라서가 아니라 제가 본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가끔 답답하긴 해도 전반적으로는 흐뭇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아무튼 <시사IN>이 저뿐 아니라 독자 여러분께도 읽는 기쁨을 더 많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시사IN> 기자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