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어느 때보다 독자 여러분의 안부가 궁금한, 그러나 차마 여쭙기도 조심스러운 요즘입니다. 독자님, 잘 지내시는지요. <시사IN> 전혜원 기자입니다.
저는 몇 년간 경제팀에 있다가 최근 사회팀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막내 기자가 된 것처럼, 낯선 이에게 말을 걸며 ‘맨땅에 헤딩’식 취재를 합니다. 지난 7월20일에는 서울시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 가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말을 걸 때마다 교사분들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휴지가 없어 죄송하다”며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기자는 차가운 관찰자여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기자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아픔을 기사로 제대로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인간적인 기자 모습이다. 아니, 기자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새뮤얼 프리드먼,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동료를 잃었고 그 동료가 왜 죽었는지 짐작하는 노동자들의 마음도 비슷하겠지요.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서 “다 좋은데 한가할 때 하라”는 말을 듣는 장애인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사 쓸 때 ‘네이버에 댓글 다는 사람을 설득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씁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을 염두에 두고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저희 <시사IN> 독자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믿음이 있습니다. 특정 사안이 벌어졌을 때 쉽게 누군가를 단두대로 올리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리라는 믿음, 시위로 불편이 초래됐어도 불편 자체보다는 왜 저런 시위를 하는지 귀 기울이고 싶어 하리라는 믿음, 같은 사회 구성원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기본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리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있기에 저희는 기획회의를 할 때 “누군가를 악마화하지 않고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를 논의합니다. ‘조회수’가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기사인지’를 기준으로 아이템을 결정합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든든한 뒷배인 독자분들을 믿고 ‘느린 저널리즘’을 실천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인상적인 책이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입니다. 기자가 추천하는 책에도 얼마 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스웨덴 출신 역사학자로 미국 뉴욕시립대 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자유주의라는 단어의 역사를 파헤친 역작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유주의가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이렇게 개인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자유주의 개념은 최근에야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리버럴리즘(liberalism·자유주의)’이라는 말 자체가 19세기 초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해요. 그 이전 2000년 동안, ‘리버럴(liberal)’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덕성을 표출하고, 공공선에 대한 헌신을 드러내며, 나와 타인이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것을 뜻했다”라는 거예요.
저는 이 ‘리버럴’에 대한 정의를 읽으며 <시사IN> 독자분들을 떠올렸습니다. 서초구의 초등학교 앞에는 교사가 아니지만 시민으로서 추모하러 온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시민’이요. 동료 시민의 안위를 진지하게 걱정하고, 그들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의 존재 말입니다. 그런 존재가 민주주의 사회에는 너무나도 필수적이지 않은가, 더더욱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좋은 시민이 많은 사회다. 좋은 시민이란 누구인가? 동료 시민에 대해 연대적 의무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2021년 실시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웹조사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 정치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지만, 결국 공동체를 바꿀 수 있는 건 좋은 시민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서) ‘좋은 시민’인 독자분들의 의사 결정에 보탬이 되는, 세상에 꼭 필요한 기사를 쓰는 것이 <시사IN>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기사를 쓰기 위해 더위에도 지치지 않겠습니다. 독자분들도 지치지 말고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