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창간 이후 매주 <시사IN>을 교정 교열하고 있는 황정희입니다. 이렇게 독자님께 편지로 인사드리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요, 반갑습니다. 사실 교열자는 매주 <시사IN> 모든 지면을 샅샅이 살피고, 독자님은 매주 기사를 읽으시니 독자님과 저는 지면을 매개로 그 누구보다 가까이 연결된 사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순전히 독자님이 <시사IN>을 선택해주신 덕분에 말이죠.
잡지에서는 교열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열자가 호출되는 경우는 대개 문제 상황이기 십상이니까요. 마감 때면 몰려오는 원고를 붙잡고 시간에 쫓기며 한 문장 한 문장 어색함이 없는지, 한 단어 한 단어가 적확하게 쓰였는지, 띄어쓰기는 통일되어 있는지, 해외발 기사에서 인명과 지명이 맞게 표기되었는지 따위를 두고 씨름합니다. 그럼에도 막상 책이 나오면 꼭꼭 숨어 있던 오자, 탈자를 비롯해 교열 실수가 고개를 내밉니다. 그동안 소소한 오탈자는 헤아릴 수 없고, 표지에 대형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었지요. ‘잘해야 본전’인 게 교열자의 숙명이라지만 부끄러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독자님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한동안 이 바닥(?)을 떠도는 물음이 있었습니다(저는 전 직장 취업 면접에서 이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맞춤법 검사기가 있는데 교열이 왜 필요해?” 20여 년 전 한글 프로그램에 탑재된 맞춤법 검사 기능은 틀린 단어에 빨간 밑줄을 그어 표시해주었습니다. 요즘은 잘못된 표현을 교정하고 설명까지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데 꽤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기능들은 글의 문맥, 논리, 일관성 등을 고려하지 못하기에 교열자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입니다. 그럼 최근 핫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는 어떨까요?
지난 8월7일 <시사IN>이 ‘인공지능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챗지피티’를 중점으로 다룬 만큼 참가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디지털 문맹에 가까운 저 또한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기술 발전에 더 이상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하거나 무신경하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고 할까요. 콘퍼런스 내용은 <시사IN> 기사로도 여러 차례 다룬 바 있습니다. 단순화한 저의 결론입니다. ‘챗지피티나 생성 AI가 인간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이 이를 검증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리는 좀 더 높은 능력(이를테면 확장된 문해력)을 갖추고 더 공부해야 한다.’
챗지피티에 교열하지 않은 거친 문장 몇 개를 넣고 교열해보라고 했습니다. 챗지피티는 특유의 유창성을 발휘해 문장의 모양새를 매끄럽게 바꿨습니다만, 글 맥락상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주술 구조 등 문장 구성과 맞춤법은 거의 완벽했지만 사실관계나 내용상의 논리는 맞지 않았죠. 당연합니다. 배경을 알지 못하니까요. 내친김에 원초적인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너는 교열기자 일을 대신할 수 있어?”
“저는 기본적인 문법과 맞춤법 교정은 도와드릴 수 있지만, 실제 교열기자의 수준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은 사람의 지각과 판단력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교열 기능을 제공하기에는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극히 상식적인 답변입니다. 완벽한 수준이 될 때까지 협업을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아무리 빠른 답변을 내놓아봤자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재구성한 결과일 뿐이니까요.
교열자는 <시사IN>에 실리는 기사를 읽는 첫 독자이기도 합니다. 권력자의 폭주를 볼 때면 막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재치 있는 풍자를 만나면 폭소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삶의 통찰을 제공하는 글에서는 공감과 위로를 받곤 합니다. <시사IN>을 통해 희로애락을 경험한다고 할까요. 독자님들도 그러지 않으실까요?
<시사IN>이 16년간 지속해올 수 있었던 건 지금껏 독자님들이 함께해주신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새삼 교열자로서 자세를 가다듬게 됩니다. <시사IN>의 기사가 독자님께 잘 가닿을 수 있도록 좀 더 집중하고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