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독자님 안녕하십니까? <시사IN> 자료팀장 이진수입니다.
뜬금없이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서문을 열게 되었는데요. 저는 취미에 관한 글로 독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20~30대 꽃청춘 시절 축구공 하나로 손흥민·이강인 선수처럼 스트라이커·미드필더로 그라운드를 신나게 누비며 살다가 무릎 연골 수술 두 번으로 인해 40대 초반의 나이에 쓸쓸히 그리고 미련 없이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취미였습니다.
40대 중반엔 민물낚시에 빠져서 10여 년간 전국의 저수지와 수로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습니다. 이 바닥에선 붕어가 30㎝를 넘기면 월척, 40㎝를 넘기면 4짜라 부릅니다. 4짜는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합니다. 2019년 안식월 휴가 때 전남 무안의 어느 수로에서 40.4㎝를 잡았는데 이걸 끝으로 초로인생(草露人生)을 깨닫고 낚시에서도 손을 놓았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취미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푹 빠져 있는 세 번째 취미인 당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서두가 길었네요. 당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하고서입니다. 91학번 신입생 중에 양귀문씨의 아들이 우리 과에 입학했다고 하더군요. 1990년대 당구를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양귀문의 당구 교실>이란 비디오를 시청했거나, 스포츠 신문에 매일 연재되던 ‘양귀문의 당구 칼럼’을 한번쯤 읽어보셨을 겁니다.
당시 초급 편부터 예술구 편까지 비디오 세 개를 그 후배로부터 받게 되었는데, 예술구 편을 시청한 후 큰 충격을 받아서 ‘아 이건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니구나’ 싶어 일찍 접었습니다.
그 후 30년 세월이 훌쩍 넘은 2021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당구TV를 보다가 PBA 팀 리그에서 저는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됩니다(프로축구나 프로야구처럼 당구도 2019년 2월에 PBA, LPBA 프로가 출범했습니다).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 선수가 11점을 득점해야 이기는 경기에서 10이닝 동안 공타 중이고, 상대 선수는 9점을 득점하여 세트 승까지 2점만 남긴 상태였는데 11이닝에 들어선 스롱 피아비 선수가 한 큐에 무려 11점을 몰아치면서 경기를 뒤집는 순간! 온몸에 짜릿한 쾌감과 전율이 느껴지며 몸속에 잠자고 있던 ‘당구 세포’들이 앞다투어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스롱 피아비 선수는 2010년, 스무 살이 되던 해 한국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2011년 어느 날 타국 생활이 심심하지 않을까 해서 남편이 당구를 가르쳐준 것인데 뜻밖에 재능을 보이자 남편이 적극 지원해 ‘당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하루 12시간씩 연습에 매달렸고, 20시간 연습한 적도 있다고 하니 후천적 노력도 한몫했을 겁니다. 선수 등록 1년 반 만에 대한민국 여자 랭킹 1위에, 2018년엔 세계 여자 랭킹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스롱 피아비 선수의 경기를 유튜브로 챙겨 보던 중 KBS <인간극장> ‘피아비의 꿈’ 편을 보고 각성하여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주말이면 동네 당구장에서 고수들에게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기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당구는 흔히 ‘기억력 스포츠’라 부르기도 합니다. 몸과 머리가 기억해야 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기술을 계산하고 암기해야 유리합니다. 그런 다음 40초 안에 샷을 해야 하니 스릴이 넘치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당구를 가르쳐주던 동네 후배가 제가 하도 실력이 안 느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진수형, 이번 생에 당구는 없네요. 그냥 포기하고 낚시나 다니세요!”(지금은 그 후배, 손절했습니다ㅜㅜ, 그땐 어찌나 서럽고 아니꼽고 치사하던지요). 하지만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초급을 넘어 대대 24점을 치고 있습니다. 스롱 피아비 선수가 35점인데 보통 30점 이상을 고수, 10점 이하를 하수라 부릅니다. 이번 생에는 당구가 없을 것 같았지만 배우고 익히니 세 번째 취미가 되었고 덕분에 두 아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지만 30점대를 향해 쭉 가볼 생각입니다.
2000년 이전 당구는 흔히 중대에서 치는 4구 위주였다면, 2020년 이후 대한민국은 대대에서 치는 스리쿠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분야든 ‘4대 천왕’이 있듯이 당구계도 세계 스리쿠션 4대 천왕이 있습니다.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이 선수들은 그냥 보너스로 기억해주세요.
독자님께 제 업무(자료팀) 이야기를 해야 하나 살짝 고민했습니다만,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항상 <시사IN>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 덕에 저희가 힘을 냅니다.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