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도 창의성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힘깨나 휘둘렀다는 이들이 난데없이 ‘금의환향’ 하는 ‘못 볼 꼴’을 보니 드는 생각입니다. 왜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계속 흑백TV인 건지 모를 일입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 조금이라도 참신한 인재를 정말 찾을 수 없었던 걸까요. 이걸 기대하는 마음이 과욕인 것인지, 청문회가 진행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리송함(a.k.a 분노)을 느낍니다.
이렇듯 엄혹한 시기임에도 얼마 전 저는 꽤 즐거운 취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취재를 하며 이동하는 차 안에서 혼자 콧노래까지 불렀습니다. 꿈에 부풀었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에 지역을 오가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저는 이번 호에 ‘녹색일자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저는 ‘녹색일자리’라고 하면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을 위한 소수의 일자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번 취재를 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취재를 하는 내내 기분 좋은 상상들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제가 태양광 설비기사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신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승객들을 태우고 1004 버스를 운행하는 모습도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상상은 저 멀리로 넘어가 직접 태양광 시민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모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탄소중립 사회가 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녹색일자리를 가지게 된다”라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의 말에 이런 상상들이 절대 뜬구름 잡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녹색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며 저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요. 이들 노동에는 ‘환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방문한 가정에서, 1004 버스를 몰고 방문한 주민의 집 앞에서 ‘손님’들은 노동자들을 웃으며 맞이했습니다. 신안 1004 버스의 운전기사인 김성숙씨는 “어떤 날은 집에 갈 때 두 손이 모자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양파며, 떡이며, 참기름이며 승객들이 나눠주고 간 선물이 한아름이기 때문입니다. 태양광 설비기사 박성국씨는 일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반겨주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현장에 가든, 고객들에게 박성국씨는 ‘한참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들의 노동은 공동체에 정량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성적 이익도 나누고 있었습니다.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을 연결하는 노동이자,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노동이었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과 ‘노동자’가 서로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운이 났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저 ‘남의 일’처럼 생경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상에 머물고 있는 미래 시나리오가 우리 삶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팀 응원 클릭 비율이 높았다는 이유로 여론 조작 TF를 꾸릴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입니다.
무기력을 거듭 학습하게 되는 요즘, 아무쪼록 이번 '녹색일자리' 기사를 읽으며 제가 가졌던 기분 좋은 상상을 독자님들도 하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날이 추워졌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아! 마지막으로 최근 본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기사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네요. 한 수면 전문가(침구류 제조업체 회장이라고 합니다)가 밤 10시39분이 지나서 자면 아무리 자도 피곤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요즘 자도 자도 졸린 것이 늦게 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보며 저도 일찍 잠자리에 누워보려고 합니다. 잠을 적게 자야 한다면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자고 그다음에 일어나서 일하라는 조언도 있더군요. 역시 과학적 근거는 빈약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잘 자야 합니다. 일찍 주무시기를. 그럼 저는 내년 뉴스레터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