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팀 김동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저의 고향(?)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0월11일 구청장 보궐선거를 치른 서울 강서구입니다. 저는 일곱 살 때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년간 살다가 광주광역시로 이사했고, 다시 열일곱 살에 강서구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20년 넘게 강서구에서 살았네요. 꽤 많은 선거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이 동네 구청장 선거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득표율 56.52%를 기록하며 39.37%에 그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쏟아진 것은 여야 대치 정국 상황에서, 민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하는 선거였기 때문이죠. 대다수 미디어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야당 압승’이라는 구도를 토대로 다음 총선을 대비한 분석 기사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 선거를 다소 ‘동네 주민’의 관점에서, 그리고 도시 문제와 전세 사기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했던 입장에서 살펴봤으면 합니다.
사실 이 선거는 김태우 후보에게 불리한 구도이긴 했습니다. 본인의 과거 때문이었죠. 김 후보가 구청장 시절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는 바람에 보궐선거가 열리게 되었는데,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구태여 다시 구청장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통상적으로 봤을 땐 핸디캡이 큰 선거입니다. 그래서인지 김태우 후보는 2022년 지방선거 때보다 더 ‘매운 맛’ 공약과 선거 구호를 들고 나섰습니다. ‘빌라를 아파트로, 화곡을 마곡으로’가 대표적이었죠.
이 선거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싶습니다. 인구 57만여 명이 살고 있는 강서구는 서울 전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아파트가 그만큼 빽빽하냐고요? 아닙니다. 강서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빌라 단지가 밀집한 화곡1동입니다. 강서에서 유일하게 5만이 넘는 곳이죠. ‘시장 살리기’로 유명한 충북 예천군보다 화곡1동 인구가 더 많습니다. 행정동 기준으로 서울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동네입니다.
사람들은 빌라 단지를 밀어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세우면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 더 많은 집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흔히 생각해요. 하지만 저층 주거 단지의 인구 수용을 아파트는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급격한 아파트 중심 재개발은 동네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을 더 외곽으로 밀어내게 되죠. 화곡1동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화곡동’이라 지칭하는 동네 인구는 20만명을 넘어섭니다. 강서구 인구는 안양시, 파주시, 제주시보다 많고, 화곡동 인구는 충주시, 안성시, 구리시를 뛰어넘습니다. 이 선거, 사이즈가 꽤 큽니다.
저는 강서구에서 살아온 지난 20년을 ‘소셜믹스가 나를 키워준 시간’이라고 평가합니다. 제가 진학한 고등학교에는 총 세 군데에서 친구들이 모였어요. ①거대한 빌라 단지 화곡동 ②염창-등촌-가양으로 이어지는 한강 인근 아파트 단지 ③지금은 마곡지구가 된 마곡 논밭과 그 너머에 있던 방화동·공항동.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가 많았고, 화곡동 빌라에 사는 친구들부터 한강변 아파트 거주민까지,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고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장환경, 소득과 계급, 정치적 성향이 다르더라도 어쨌든 ‘친구’라는 이유로 힘이 되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이때 만난 친구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소셜믹스 덕분에 미약하게나마 타인을 포용하며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이 지역에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신식 업무지구인 마곡지구가 들어섭니다. 논밭이던 곳이 최첨단 기술 연구개발 단지가 되었죠. 소득이 높은 사람도 많이 유입되고, 부동산 자산 보유에 따른 격차도 커졌습니다. 반면 2019년 이후 오래된 주택단지인 화곡동에서는 전세 사기가 들불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구청장 자리에 재차 도전하는 김태우 후보는 그래서 이번 선거에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어요. 빌라가 많은 화곡동 재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서 마곡처럼 만들겠다. ‘빌라를 아파트로, 화곡을 마곡으로’라는 구호는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이 약했던 강서구 화곡동 일대를 공략하기 위한 구호로 떠올랐죠.
정치 공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걸 ‘해볼 만한 승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008년 이른바 ‘뉴타운 선거’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재개발 중심의 공약과 바람을 타고, 당시 18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펼쳐진 총선인 데다, 2007년까지 이어진 부동산 상승기의 기억이 강렬했던 때죠. 다만 김태우 후보의 이 메시지 전달은 딱히 동네 주민들에게 울림이 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화곡동에서 득표율 격차가 20% 이상 나는 걸 보면요. 김 후보가 자신의 진심을 전하겠다며 빌라 전세를 얻어 지냈다고 하는데, 10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면대서 녹물이 나옵니다. 차마 양치할 수 없어 싱크대서 해결합니다. 바퀴벌레와는 어느덧 친구가 됐습니다”라고 쓴 내용은 오래 산 주민 입장에서 꽤 불쾌했습니다. 화곡동 빌라에서 20년 넘게 살았고, 아직도 부모님이 화곡동 빌라에서 거주하는 제가 느끼기에는… 조금 모욕적이기도 했고요. 녹물과 바퀴벌레 없이, 잘 정비하며 살아왔으니까요. 마치 평생 아파트에서 살았던 사람이 '가난 체험'을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어째서 부동산 선거, 재개발 선거가 통하지 않았을까요? 일단 대법원 유죄 판결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마당에, 원인 제공을 한 구청장이 다시 후보로 나왔다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후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여당도 그걸 알아서 중진 의원을 비롯해 당이 총력을 기울이며 선거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너무 격차가 큽니다. 저는 이 현상을 부동산 선거에 대한 피로감과 이해관계 분석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강서구는 부동산 관련 이슈로 지역민들이 꽤 오랫동안 지쳐 있었습니다. 대표적 이슈가 전세 사기입니다. 어째서 화곡동은 전세 사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요? 저는 2019년부터 화곡동 일대에서 벌어진 전세 사기를 오랫동안 취재했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인구 5만명이 넘는 ‘화곡1동’ 일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랜 주민들의 증언을 들으면 그 원인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시작은 앞서 말한 ‘뉴타운 선거’였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화곡1동 일대는 ‘화곡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재개발을 추진했습니다. 선거도 보수정당이 승리했죠. 그런데 문제는 고도제한,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뉴타운급 대규모 개발이 성공한 사례는 서울에서도 손에 꼽습니다. 은평 뉴타운, 길음 뉴타운, 왕십리 뉴타운 정도죠. 뉴타운은 ‘덩치 큰 재개발’입니다. 뉴타운>재개발>모아타운>모아주택 순으로 정비사업의 ‘사이즈’가 결정됩니다. 문제는 김포공항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가 화곡 뉴타운 상공을 지나다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도제한이 풀리기 어렵죠. 결국 사업 추진은 실패하고, 이 동네에는 오매불망 재개발만 기다리던 단독주택과 ‘빨간 벽돌’ 연립주택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2013년 즈음부터 이 동네에 신축 빌라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단독주택 두 채를 합쳐서 빌라를 지으면, 분양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이즈음 화곡1동에 한 공인중개사가 중개사무소를 열었습니다. 조 아무개씨. 그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축 빌라에 전세 세입자를 알선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방찾기’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조씨는 전세 세입자를 끌어오는 능력이 탁월해 동네 분양업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다른 공인중개사들로부터는 원성을 샀습니다. 괜찮은 신축 빌라 물건도 조씨에게 몰리기 시작했죠.
초창기 ‘화곡동 신축 빌라 전세 사기’는 조씨가 주축이 되어 확산됐습니다. 이른바 ‘동시 진행’이 빈번했어요. 동시 진행 전세 사기는 이런 식으로 펼쳐집니다. 분양가 1억8000만원짜리 신축 빌라가 있다고 칠게요. 이걸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까(2010년대 중반만 해도 빌라 매입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조씨 같은 공인중개사들이 전세 2억원에 내놓아 임차인을 구해옵니다. MB 정부 때 도입된 전세보증금 대출이 박근혜-문재인 정부 들어 점차 확대됐죠. 임차인(미래의 전세 사기 피해자)은 저금리에 대출 끼고 전세 2억원짜리 빌라에 들어옵니다. 그럼 이제 이 집을 ‘가짜 임대인’이 분양업자나 건물주에게서 2억원에 매입하는 구조입니다.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은 갭투자,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로 매입하는 거죠. 전세가가 분양가보다 2000만원이 많네요. 이 2000만원은 분양업자, 공인중개사, 가짜 임대인이 서로 나눠먹습니다. 이 구조가 본격화된 것이 2016~2017년이었어요.
중개인 조씨는 중개보조원을 여럿 두고 일했는데요. 조씨 밑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며 전세 사기 시스템에 발을 디딘 사람 중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도 등장합니다. 바로 언론에서 ‘빌라왕’이라 불린, 주택 수백 채를 보유했으나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된 김대성이 대표적입니다. 씁쓸하게도 무너진 뉴타운의 꿈→낡은 단독주택과 연립을 빌라로 탈바꿈→(매입가보다 전세가가 높은) 고가 전세 세입자 받기→가짜 임대인에게 물량 떠넘기기 순으로 이 동네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던 것이지요.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는 지난 15년간 이런 상처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 패착인 ‘이해관계 분석 실패’도 전세 사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빌라를 아파트로’ 바꾼다면 가장 좋아할 사람들은 누굴까요? 화곡동에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들이겠죠? 근데 실거주하는 사람들은요? 전세 사기 피해를 입었거나, 적어도 피해자를 한 명 이상 아는 사람들일 겁니다.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나의 이익과 먼 재개발을 보고 표를 줄 수 있을까요? 차라리 여당 출신 구청장 후보라면, ‘정부와 잘 이야기해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더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강서구가 화곡동만 있는 건 아니겠죠? 맞습니다. 나머지 인구 30만명은 다른 동네에 퍼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묘하게도, 김태우 후보의 선거 전략은 유독 ‘재건축·재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나머지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넉넉하게 이긴 기억이 있으니까요. 강서구 전체 고도제한을 풀면 가양동이나 등촌동에 있는 낡은 아파트도 더 높은 층수로 재건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해왔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행정동 기준 김태우 후보가 승리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저는 화곡은 마곡이 될 수도, 마곡이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밭 평야에 기업들을 끌어들여 격자형 신도시를 구축한 마곡과 달리, 구릉지 화곡동은 대규모 재개발보다 중소 규모 주거환경 개선이 현실적인 답이라고 생각해서죠. 그래서 서울시도 대규모 재개발 대신 모아타운과 같은 중소 규모 주거정비사업 지역을 이 동네에 확산시키는 중입니다. 모아타운은 16층 이상 높은 아파트 대신, 적당한 높이의 주거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김태우 후보 캠프에서는 고도제한을 완화해 용적률을 최대한 쓸 수 있는 고층아파트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했죠.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약속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정비사업 과정에서 ‘다음 선거까지 버티면 아파트를 더 높이 지어서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논리에 힘이 생깁니다. 저는 김태우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패했지만, 향후 수도권 선거에서 이런 재개발·재건축 관련 공약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2008년 정치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드넓은 뉴타운을 꿈꾸게 했고, 2023년에는 고도제한 상관 없는 고층아파트 단지를 꿈꾸게 하고 있습니다. 개표 결과 개발 논리가 당분간은 조용해지겠지만, 솔직히 조금 겁이 납니다. 2008년에 외친 정치적 구호가 ‘전세 사기의 주요 무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처럼, 2023년에 등장한 개발 중심 정치적 접근이 동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스럽거든요. 부디 저희 동네도, 독자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에도 격렬한 욕망의 분출 대신 평화롭고 점진적인 변화가 찾아오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