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문화팀 김영화 기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드린 게 지난 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구석에 접어두었던 온수매트를 꺼냈는데,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떠껀한’ 늦가을의 맛이겠지요. 독서의 계절을 맞아 책을 구매하신 분들 계신가요? 침대맡에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쌓아두고만 있는 책들이 떠올라 시작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최근 책에 관한 기사를 두 차례 썼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문화 예산 삭감‘과 ‘금서 전쟁에 휘말린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하반기 문체부 예산안에서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출판산업 육성 예산이 전반적으로 삭감되면서 출판, 작가, 지역 서점 등 ‘출판 생태계’가 위축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편 전국 공공도서관의 경우 ‘청소년 유해 도서’를 폐기해달라는 보수 단체의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청소년 유해 도서는 다름 아닌 여성가족부가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한 성평등, 성교육 도서입니다.
다른 결의 사안이지만, 책이 정치적 간섭의 대상이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유독 올해 그렇습니다. 유튜브 때문에 집중력 도둑맞고 문해력을 잃어간다고 하는 다급한 시대에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취재였는데, 책에 대한 공격은 놀랍게도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문체부 장관의 ‘출판 이권 카르텔‘ 발언 이후 출판 예산이 줄고, 학부모 단체의 민원으로 충남 지역 도서관들에서는 특정 책들이 열람 제한되었으니까요. 각기 다른 두 현장에서 공통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당장은 표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문화의 훼손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자주 고민한 10월이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작가는 출판에 대해 “지식 정보의 맨 밑바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떠돌아다니는 지식을 체계화해서 책으로 공급하는 행위를 바탕으로 한 시대의 문화가 쌓인다고요. 공공도서관에 대해 들었던 말도 인상에 남습니다.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읽을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것. 어쩐지 기사를 쓰는 일과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지, <워싱턴포스트>도 “공공도서관은 책을 둘러싼 ‘문화전쟁’의 최전선이 되었다”라고 보도했는데요. 책에 대한 공격은, 시민사회가 양극화될수록 또 나와 다른 주장을 배격하려는 욕구가 심해질수록 나타나는 사회적 징후 같기도 합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 도서관장과 사서분들이 취재에 응해주셨는데요. 민원을 우려해 기사에 자세히 밝히진 못했지만, 책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기록해달라며 공통적으로 요청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저조하면 도서관은 외풍에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요. 다시금 언론의 역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말엔 ‘금서’ 혹은 ‘유해 도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금서 목록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발간한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서인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보자는 취지인데요. 11월6~10일 충남 예산 마르코책방에서 릴레이 금서 도서전이 열린다고 하니, 가까운 분들은 찾아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주말은 미뤄뒀던 책부터 펼쳐봐야겠습니다. 책과 함께 풍요로운 가을 되시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