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팀 교열기자 김완숙입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이 ○학년 담임쌤’이라는 휴대전화 번호가 뜨면 심장이 벌렁댑니다. ‘아, 또 오늘은 무슨 일일까? 뭔 사고라도 쳤나?’ 중2 큰아들과 초등 고학년 작은아들을 키우고 있는데요, 학교 담임선생님들한테 전화를 받는 일은 항상 긴장되곤 합니다. 어떤 날은 큰아이가 누구랑 싸워서 혹은 맞아서, 어떤 날은 작은아이가 누구랑 싸우거나 혹은 맞아서 일명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학교폭력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중학생이 된 큰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수차례 전화를 받았습니다. 덩치가 커진 아이가 유독 같은 반 한 아이와 자주 부딪친다며 주의를 주셔서 한 해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아들 학폭 사건으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역시 아들 학폭 의혹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딸 학폭 사건으로 사임한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등 부모의 돈과 권력을 이용해 학폭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이번 주 문상현 기자가 쓴 기사(<시사IN> 제842호 ‘뒤늦은 학폭 조치, 초고속 사표 수리’)를 보면 아마 혈압이 오를 수도 있으실 겁니다.
변진경·김연희 기자가 쓴 학폭 관련 기사(<시사IN> 제812호 ‘406개 판결문으로 본 ‘법원으로 간 학폭’)를 보면 초등학생은 신체적 폭행 사건이 절반 이상이었고, 중·고등학생일수록 성과 관련된 폭력,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 빈도가 높다고 하더군요. 또 법원으로 간 학교폭력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어서 초등학생들끼리 딱지치기를 하다가 생긴 분쟁에서부터 고등학생의 집단 성폭행, 감금, 불법촬영 및 유포까지, 내용의 심각성과 파장이 사건마다 모두 달랐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전화를 받으면 자초지종을 파악한 뒤 아이의 말을 들어봅니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확인을 합니다.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대부분은 아기 때부터 보아오던 어린이집 친구, 초등학교 동창 뭐 이렇습니다. 부모들도 꽤 알고 지내고요. 아이는 잘못을 했더라도 자기중심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지라 그 사건을 보았거나 현장(?)에 있었던 같은 반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잘못을 한 경우에는 제가 그 부모에게 전화로 사과를 하고(지난해에는 같은 반 친구 부모와 자주 통화를 했네요ㅜㅜ), 아이에게도 정말 마음을 다해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를 시킵니다.
<시사IN> 제812호 ‘학교폭력 그 이후, ‘생기부 빨간 줄’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기사에서 교육청에서 일하는 학폭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학폭 조사가 진행되면 자기가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아이들이 더 영악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들이 ‘내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징계 수준이 높아지고 이걸 카드로 해서 법적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초반에 아이가 잘못을 인정했다가 후에 부모의 개입으로 그걸 뒤집는 사례가 많은 게 이 때문이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잔혹한 형사사건급 학폭 문제는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지만, 당사자들끼리 충분히 풀 수 있는 일을 학폭위로 넘기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서로 소송을 걸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 일들이 많다니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한편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경미한 학폭 사건의 경우 내 아이의 말만 듣지 말고 다른 아이들의 말도 들어보고, 최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가 아니라 ‘내 아이도 그럴 수 있다’, 또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형형색색의 단풍 만끽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