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시나요? 저는 최근 몇 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콘텐츠를 자주 틀어놓았습니다. 보고 나서도 별로 기억에 남지 않고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 그런 채널들 말이죠. 가령 특별할 것 없는 재료로 삼시 세 끼를 해먹고 침대보를 털거나 빨래하는 일상을 공유하는 브이로그, 소도시를 다니며 우연히 발견한 동네 카페에 방문하는 영상 같은 것들입니다. 발 디딘 현실 세계가 드라마틱해 화면 안에서는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찌 보면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실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니까요.
최근 제 알고리즘에 방송인 신동엽씨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이 떴습니다. 평소 보지 않던 채널이라 의아해서 클릭해보니 그날의 초대 손님이 비비였습니다.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의 그 비비입니다. 아마 그의 노래 ‘밤양갱’을 검색해본 이력 때문에 뜬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인데,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신동엽이 ‘카스테라와 우유’ 일화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부러워 엄마한테 유치원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데서 출발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에 가는 게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계속 조르니 엄마가 교회 부설 유치원에 입학을 문의했죠. 그 일을 보고 오는 길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우유랑 카스테라 사줄까?”
당시만 해도 귀한 음식이고 아버지 월급날에만 먹었던 메뉴라고 합니다. 그 얘길 듣자마자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걸 직감합니다. 보통의 아이라면, 혹은 저라면 그 사실이 속상해 안 먹는다고 소리를 치고 그 자리에서 찡찡거림을 시전했을 것 같습니다. 많아도 일곱 살일 테니까요. 신동엽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유치원에도 못 가고 카스테라도 못 먹는 것보다는 후자를 택한 거죠. 그렇게 하나를 건졌고 그는 그게 살면서 첫 번째로 너무 잘한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차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방송인으로서 그가 롱런할 수 있었던 배경의 어느 작은 단면을 목격한 듯도 했습니다. 후배 동료인 비비가 힘들어할 때 그 얘기를 해줬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비비는 계속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어린이 신동엽의 그 선택이 굉장히 어른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하면 마음 한켠이 짠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 돌아갈 때 주저앉아 투정 부리는 게 어린이의 특권 아닐는지요. 너무 빠르게 철이 든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저 ‘역시 난사람은 다르구나’ 정도로 생각했지요. 그렇게 지나쳤는데 이후로도 문득 그 ‘사건’이 생각납니다. 유치원에 실패하고, 카스테라와 우유를 획득한 방송인 신동엽의 그날에 대해 말입니다.
저의 지난 선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유치원에 대한 미련과 섭섭함으로 하루를 망치고 말았지만요. 유치원과 카스테라를 동시에 얻는 날은 인생에서 좀체 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독자님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는지요. 부디 유치원을, 그게 아니면 포슬포슬한 카스테라의 단맛이라도 즐기셨기를 바랍니다. 그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그 자체로 사건인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곁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한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