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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기자의 편지📮
님은 잘 우는 편일까요? <시사IN>에는 ‘비공식’ 3대 울보가 있습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저, 전혜원 기자입니다. 지난주에는 김영화 기자가 쓴 책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를 다 읽고 한참 눈물 바람을 했습니다.
외국인이 가장 먼저 익히는 단어는 어쩌면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2021년 ‘미라클 작전’으로 한국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자녀 아미나는 의사가 꿈입니다. 아미나가 한국에서 일찌감치 배운 말은 “괜찮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담긴 체념이 책을 덮고도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2018년 제주도로 입도한 예멘인 자말 씨는 딸 다섯 명과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고위공무원이던 자말 씨는 전쟁 중인 예멘에서는 불가능했던 자녀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기대했습니다.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둘째 딸 살로아는 3월8일 여성의날에 올린 SNS 포스팅을 제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모든 훌륭한 여자는 부모 뜻을 거스른다. 오늘은 세상 모든 여성에게 행복한 날’이라고 적혀 있다는 말과 함께요. 한국 사회가 살로아를 ‘우리 아이들'로 받아들여 한국의 여성 과학자로 키워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살로아는 현재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했습니다.
김영화 기자 역시 울산의 경험을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울산 동구의 사례가 대부분의 한국 사회와 달랐던 건 주민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이주민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지역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씁니다. “이주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 사회에 점점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도요.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아미나는 어떨까요. 한국 사회는 이주를 둘러싼 여전한 갈등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요. 아미나를 ‘우리 아이들’로 키울 준비가 이제는 됐을까요. 아미나‘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미나는 2022년 3월 고 노옥희 교육감의 손을 잡고 등교했던 학생이기도 합니다. 아미나를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여러 논란 끝에 첫 등교했던 3월21일은 ‘나우루즈’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설날이었다지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나우루즈 다음 날 학기가 시작됩니다. 여러 우연이 운명처럼 겹쳤던 날을 완성했던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노옥희 교육감의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아미나의 손을 굳게 잡고 등굣길을 함께하는 모습…을 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도리 없이 울곤 합니다. 노옥희 교육감은 제게 정치의 필요와 갈등의 쓸모를 다시금 알려준 분이기도 합니다. 선출직 정치인은 언제나 ‘표’에 민감한 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가치는, 특히 소수자의 권리는 표만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그날 노옥희 교육감이 잡은 것이 아미나의 손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17일 저와 김영화 기자는 ‘노옥희재단 추진위원회’의 초대로 울산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북토크를 가졌습니다. ‘울산이 함께 쓴 책’이니만큼 첫 북토크 장소로 참 맞춤했지요. 노옥희 교육감의 평생 ‘동지’이자 반려인 천창수 교육감은 맨 앞줄에 앉아 두 시간 넘게 이어진 북토크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질의응답 시간, 이야기는 저자보다는 교육감을 자주 향했습니다. 그는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주의 깊게 들었고요. 아마 노옥희 교육감이 살아 있었다면, 꼭 그와 같았겠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새로운 한국인’과 살고 있습니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를 읽으며 제게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아프가니스탄 자녀들을 한인 이민 2~3세대와 비교한 부분이었습니다. 2022년 7월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의 한국 적응을 위해 강연에 나선 박현도 교수(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지만 아들 딸은 ‘반(半)한국인’이 될 거예요. 그들의 자녀는 한국인이 될 거고요. 아버지들은 어쩌면 마지막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에요.” 전국 여러 동네 책방이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메멘토출판사 인스타그램). 저는 6월7일 춘천 바라타리아 책방에서 한 번 더 사회를 볼 예정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책 안팎을 둘러싼 더 생생한 이야기와 고민을 님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는 5월이었습니다. 5월1일부터 유튜브팀에서 편집소통팀으로 부서를 옮겼습니다. 변진경 신임 국장이 임기를 시작하며 신설한 팀입니다. 저는 또 한 번 ‘취재하는 일 빼고 나머지 다’를 숙제처럼 받았습니다. 꼼꼼하고 정확한 국장과 ‘될 일은 어떻게든 된다’주의자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일하는 저는 3주 사이에도 몇 번 불꽃이 튀었습니다. MBTI를 믿진 않지만, J형과 P형이 물과 기름이라는 건 어쩐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사IN>이 한국 최고의 주간지라는 믿음과 자부만은 단단하게 공유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않나요? (웃음)
<시사IN>은 ‘저자’가 많은 매체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그 특성을 십분 살려 <시사IN> 편집국에 독자를 초대해 북토크를 열어볼까도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독자가 있는 곳으로, 무엇보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 저희가 갈수 있을지도 계속 궁리하고 있습니다. 5월22일에는 <시사IN> 유튜브 구독자가 30만명을 넘었습니다. 정치이슈팀으로 재편된 유튜브팀의 활약과 실험도 계속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사IN>은 언제나 잡지보다 더 큰 매체임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통해 실감합니다. 우리가 읽고 보는 모든 결과물이 협업의 결과물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대단치 않아도 협업의 결과물은 대단할 수도 있어서 ‘아무쪼록 읽어봐주세요’ ‘아무쪼록 봐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이번 주도 <시사IN> 콘텐츠들을 자랑스럽게 세상에 내놓습니다. 님 덕분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