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소통팀 김완숙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사IN> 편집국에는 사춘기 자녀들을 둔 부모가 여럿 있습니다. 어느 날 제 큰아들과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고 아무개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는 학교 잘 다녀요?” 자기 아들은 요새 ‘롤(<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에 빠져서 학교를 가끔 빼먹기도 한다고요.
사실 저희 아이도 재작년과 작년 2년 동안 피시방에서 거의 살았습니다. 역시 ‘롤’에 빠져서 평일엔 학교 끝나자마자, 주말과 방학 땐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피시방을 집 삼았습니다. ‘10시 요정’이라고 청소년은 밤 10시가 되면 피시방에서 쫓겨나는데(셧다운),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요(사장님, 감사합니다!). 아이는 피시방에 가면 엄마의 전화와 문자를 씹는 등 연락 두절 상태였다가 밤 10시 반쯤 집에 오곤 했습니다. 처음엔 싸우기도 하고 타일러도 보고 몇 번은 피시방에 아이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넓디넓은(동네에서 시설이 제일 좋은 곳으로 음식도 팔아요) 피시방에서 온통 검은색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게이밍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욕설이 난무하는 검은 무리들 틈에서 아이를 찾아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두세 번 찾으러 갔다가 포기했습니다.
지난겨울이었나요?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2023 LoL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을 아이와 함께 TV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그날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1만명이 모여 거리 응원전을 펼쳤고, 전 세계 동시접속자 수가 1억명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중국 WBG 팀과 한국 T1 팀의 결승전이었는데요, ‘역시 페이커!’라며 아들은 흥분해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날 처음 페이커(이상혁) 선수의 플레이를 보았습니다. 중국 팀을 3-0으로 가볍게 이기는 것을 보면서 ‘역시 페이커!’라는 감탄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게임을 지켜보니 20여 년 전 제가 잠시 빠져 있던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저의 종족은 ‘프로토스’였습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야근할 당시 동료·선배들이 팀으로 게임(팀플레이)을 했는데, 어깨너머로 구경하다가 조금 공부(?)를 한 뒤 ‘스타’에 입문했습니다. 실력이 미천한 까닭에 광물을 캐서 열심히 본진을 건설하고 있으면 테란과 저그들이 드롭십으로 몰려와 GG를 하게 만들더군요.^^;;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테란 황제 임요환 선수와 2인자 저그 홍진호 선수가 나왔는데 참 반가웠어요.
대한민국이 게임 강국이 된 건 초고속 인터넷망과 피시방 등 인프라가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e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시사IN>의 게임 전문 이상원 기자가 쓴 제847호 커버스토리 ‘중국 꺾고 증명한 e스포츠 아이콘’과 ‘유망하고 빛나는데 부실하고 불안하다?’ 기사를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자녀가 게임에 빠져서 한숨이 나오거나 빡침이 올라오는 독자님들 계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근 2년 동안 동네 피시방의 VIP였던 큰아이는 서서히 발걸음을 줄이더니 요새는 통 가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할 만큼 해봤는데, 이젠 재미가 없답니다. ㅋㅋㅋ 대신 농구부에 들어가 밤마다 공원 농구장에서 공을 튕기며 운동하다가 친구들과 뒤풀이를 갑니다. 무언가에 빠져서, 그것이 게임이든 운동이든, 질릴 만큼 해보면 미련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형에게 게임을 전수받은 동생이 이젠 피시방 골드회원이 되어갑니다. ㅠㅠ
6월 날씨가 맞나 의심스러운,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독자님, 건강에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사IN>을 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