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뉴스를 확인한 저는 “에?“도 아니고 ”잉?”도 아닌, 말 그대로 ‘기가 막히는’ 그런 소리를 냈습니다.
“엙?”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도중 피격당했다는 속보 알림이 줄줄이 떠 있었어요. 더 ‘기가 막히는’ 건 사진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트럼프가 비장한 표정으로 청중을 향해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방금 전 총을 맞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대담한 제스처인 데다, 방금 전 총이 발사된 아수라장에서 건진 사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잘 짜인 구도였습니다. “짠 거 아냐?”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Evan Vucci’를 검색했습니다. 평소에 어떤 사진을 찍는 기자이길래 이런 장면을 건졌는지 궁금했습니다. 몇 번 스크롤을 하다 또 “엙?” 하는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에번 부치 기자는 취미로 주짓수를 하는 생활체육인이었습니다.
유도에서 파생된 주짓수는 상대방의 관절을 꺾거나 졸라서 항복(탭)을 받아내는 스포츠입니다. 10년 전에 시작한 주짓수는 제 삶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한 운동을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하느냐고 물어보지만, 정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운 좋게 나와 잘 맞는 운동을 찾은 것뿐입니다. 스포츠가 내 성격이나 신체에 잘 맞고, 그래서 재밌게 하루 이틀 다니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그렇듯 습관이 되면 그냥 그렇게 쭉 하게 되고요. 그 관성이 다른 일을 하는 근성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믿을 뿐 실제로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입사하고 나서는 도장에 나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기는 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을 나갑니다. 아침에 무거운 도복을 챙겨 나갔다가 밤에 다시 고스란히 집에 가져다 놓는 슬픈 날도 많습니다. 에번 부치 기자도 비슷하겠지요. 다른 모든 생활체육인도 비슷할 겁니다. 알 수 없는 연대감이 차오르는 바람에 그만 “짠 거 아냐?”라는 의혹과 불신은 눈 녹듯 사라지고(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오늘은 운동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생활체육인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에도 일단 가방에 이것저것 잔뜩 챙겨보시죠^^
(참, “오래 했으니까 다 이기겠네?” 이 질문도 많이 듣습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입니다. 물론 아무 기술도 배우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길거리에서 싸워본 적은 없습니다. 매트 위에서 도복을 입고 정해진 룰로 스파링을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요. 정말 싸워야 할 수밖에 없다면 싸우겠으나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치는 걸 선택할 거라고 답하면 ‘에이‘ 하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공간에서 스파링을 하다가도 ‘구급차 탈 뻔했네‘ 하는 아찔함이 스치는 경험을 종종 하다 보면, ‘이기다’ ’항복하다’ ’도망치다’라는 단어의 뜻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싸움은 생각보다 거칠고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도망치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