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시사IN> 편집국장 변진경입니다.
편집국장을 맡고 나서 뉴스레터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매주 한 번씩 ‘편집국장의 편지’로 독자들께 편지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쳐납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대장(지면에 텍스트를 앉힌 편집본을 말합니다)에서 긴 문장들을 잘라내느라 끙끙대곤 합니다. 그래도 할 말이 더 남아 이렇게 뉴스레터로 님에게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지면에 담지 못하는 조금은 소소한, 하지만 님께 꼭 전하고픈 이야기들이 제게 아주 많습니다.
오늘 뉴스레터 독자들에겐 저희 책 ‘발행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사실 얼마 전 제 메일로 이것에 관한 질문을 주신 독자님이 계셨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답변 시기를 놓쳐버렸는데, 이 기회를 빌려 그 독자님께도 답을 드릴까 합니다.
그 독자님께서 물으셨습니다. “PC로 시사인 읽다가 의문이 들어서 질문합니다. ‘제878호/2024년 7월16일’이 무슨 뜻일까요? 7월16일이 발행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독자님이 제게 메일을 주신 날은 7월5일이었습니다. 독자님께서는 7월5일 새벽에 마감해 갓 나온 저희 <시사IN> 제878호 표지를 보고 문의를 남기셨습니다. 종이책이 벌써 독자님 댁에 도착했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 전자책이나 e북 독자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죠, 참 어리둥절하죠? 책이 인쇄소에서 찍혀 나온 날은 7월5일 새벽인데 책 표지엔 왜 그보다 훨씬 뒤 미래인 7월16일이 찍혀 있을까요?
저도 똑같은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시사IN>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저는 제가 아주 심각한 오타를 발견한 줄 알고 선배들에게 고래고래 신고를 했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말하더군요. “그거 ‘유통기한’ 같은 거야.”
읭? 유통기한이라니요? 우유도 요구르트도 아닌 주간지 종이책에 무슨 유통기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발행일의 사전적 의미는 ‘출판물을 발행한 날짜’이지만, 주간지 업계에서는 다른 의미로 통용됩니다. 바로 ‘책이 독자들에게 닿는 시기’입니다. 7월5일에 인쇄되어 전국 우편망을 통해 배송되기 시작하면 빠르게는 2~3일, 느리게는 일주일 이상씩 걸려 독자님들 댁에 도착합니다. 그 기간을 넉넉히 잡아 표기해놓은 것이 바로 <시사IN> 표지에 찍힌 ‘발행일’입니다.
그러니까 ‘유통기한’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네요. 그때까지는 독자님 손에 도착해 뉴스로서 읽혀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그 기간을 지나고 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읽는 맛이 덜 나기도 하겠고요.
사실 그 발행일이라는 것은 저희 <시사IN> 같은 주간지가 지닌 한계와 숙명을 드러내는 날짜이도 합니다. 익일 새벽 배송이 보편화된 이 급속 물류 세상에서, 몇 초 만에 뉴스판이 갈리는 온라인 속보 환경에서 ‘넉넉잡아 열흘 가까이’ 여유를 두고 뉴스를 전달한다니요. 이번 주 목요일에 마감한 기사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기한을 다다음 주 화요일까지로 상정한다니요.
솔직히 기사 쓰는 기자들과 그 기사를 엮어 책을 만드는 편집국장 입장에선 속이 터질 노릇이긴 합니다. 오늘 뜨거운 이 뉴스가 다음 주, 급기야 다다음 주에는 어떻게 얼마나 식어 있을지 도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책은 일주일 이상의 ‘효력’을 내야 하는데, 책을 받아든 독자들이 ‘이거 구문이네’라며 책을 집어던질까 봐 늘 노심초사 전전긍긍합니다.
힘겹게 책을 마감해놨는데 이튿날 그 기사 내용을 뒤집는 발표나 새 이슈가 터지면 며칠 밤 동안 수차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냉수를 찾습니다. 제가 가장 미워하는 정치인은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시사IN> 마감으로 최신 뉴스를 담아내지 못하는) 목요일과 금요일 중대한 발표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월요일에 차기 대선후보 사퇴 발표를 해줘서 그가 어찌나 고맙던지요. ‘먼데이 메이크스 시사인 그레이트!(Monday Makes Sisain Great!)’라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더군다나 공공우편 서비스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어서 저희 책이 독자님 댁에 도착하는 시기도 점점 더 뒤로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쓰리고 아픕니다. 그렇다고 저희 5000원짜리 책 한 권을 3500원 이상의 택배비를 더해 독자님께 판매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가혹한 마감 환경이 주간지 기자들에게는 어떤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아니, 어디 길에서 돗자리 펴라는 거야? 내가 다음 주 상황을 어떻게 알아?”라고 툴툴대며 기사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덧 ‘다음 주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앞날을 잘 맞힌다는 건 아니고요. 길~게 보는 훈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슈의 오늘에 매몰되지 않고 내일, 다음 주,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까지 한국 사회에 남길 영향과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의 유통기한을 ‘발행일’에 맞게끔 늘리기 위한 자구책이자 발버둥이기도 합니다. 목 짧던 기린이 높은 곳에 열매가 맺힌 나무만 있는 환경에 처해졌을 때 목 긴 기린으로 진화하는 것처럼(다른 가설도 있긴 합니다만), <시사IN>에서 일하면 ‘어쩔 수 없이’ 길게, 멀리 사안을 내다보며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로 진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독자들께 외면받지 않으니까요.
오늘도 저는 목 긴 기린이 되어가는 심정으로 이번 호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사는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기사는 성공하겠죠. 실패율을 낮추는 게 저와 <시사IN> 기자들의 목표입니다. 오늘로부터 12일 뒤인 8월6일이 발행일로 찍힌 <시사IN> 제881호 기사를 수줍지만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여기 실린 기사들이 부디 오래오래 ‘신선하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