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을 한번 볼까요? 올해 전력 사용량 최고치를 기록한 8월20일의 ‘발전원별 실시간 전력 수급 현황’입니다. 오후 3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력 사용량이 최대로 치솟는 걸 볼 수 있죠? 이때 에어컨 냉방 등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기 때문입니다. 발전원별로 자세히 볼까요?
우선 맨 아래 주황색은 원자력(핵발전)입니다. 수치가 거의 고정이죠? 이것이 바로 원자력의 특징입니다. 원자력은 한번 돌리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끌 수 없는 불’이죠. 그 위에 갈색인 유연탄(석탄)을 볼까요? 원자력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수치 변동이 크지 않습니다. 석탄발전 역시 한번 불이 붙으면 끄기가 어렵습니다. 원자력과 석탄, 끄기 어려운 두 발전원(경직성 발전원)이 국내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쪽 노란색은 가스 발전입니다. 변동 폭이 크죠? 가스는 켜고 끄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전력량이 모자랄 때는 가스 밸브를 열고, 남아돌 때는 잠그면 되죠. 가스를 유연성 발전원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서는 여름철 전력 피크 시간대의 발전량을 이 가스 발전이 충당하고 있습니다.
가스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가격이 비쌉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럽은 물론 한국도 에너지 위기에 처했죠.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여름철 전력 수요가 피크에 달할 때는 가스 발전에 의존하게 됩니다. 가스 가격이 치솟으면 한전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철 오후 크게 늘어나는 노란색 영역을 보면서 “가뜩이나 적자가 심한 한전의 상황이 더 악화되겠구나” 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 탄소 배출이 많습니다. 석탄보다는 덜하지만 가스의 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75% 정도나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탄소 감축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죠.
해법이 없을까요? 빨간색을 보시죠. 태양광입니다. 수치가 미미하죠? 이게 해법의 단초입니다. 저 미미한 수치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태양광은 연료비가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대, 즉 태양이 하늘 높이 떠 있을 때에는 발전량이 늘어납니다. 여름철 피크 시간대 전력 수요를 가스 대신 공짜로 책임질 수 있는 발전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물론 비가 오거나 해서 태양광 발전량이 적을 때는 다른 발전원을 가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 태양광 발전 비중은 4%에 불과합니다. <그림>의 빨간색 비중과 비슷하죠? 윤석열 정부 이후 태양광 사업 비리에 칼을 겨누면서 국내 태양광 발전 사업은 더욱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풍력발전은 더합니다. <그림>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발전 비중이 0.5%밖에 안 됩니다. 전세계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2021년에 10%를 넘겼는데 우리는 4.5%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사실 알고 계시죠?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었습니다. ‘미래세대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취지였습니다. 결국 탄소 배출이 많은 발전원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판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판결이 있던 날 저도 헌법재판소 앞에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습니다. 땀과 눈물이 뒤엉킨 헌법재판소 앞의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와 의회가 이번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시하겠습니다.
요즘 여름철이면 유행하는 섬뜩한 인사말이 있습니다. “남은 생애에서 올여름이 가장 시원할 겁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입니다. 폭염과 폭우, 그리고 태풍까지 몰아치는 극한 여름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에어컨의 도움으로 버티면 되는 걸까요? 매년 치솟는 전력 수요를 원자력과 화석연료 발전에 의존하면서 하던 대로 하면서 살면 되는 걸까요?
가을입니다. 남은 생애에서 올여름보다 더 시원한 여름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