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사회팀 이은기 기자입니다.
추석 연휴가 막 끝난 9월19일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님께선 추석 평온하게 보내셨나요? 저는 직전에 ‘응급실 위기’를 취재해서인지, 내내 불안했습니다. 지난 2월 시작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 고갈돼 있는 상황에 맞는 연휴였기 때문입니다. 다들 무탈하셨길 바랍니다.
사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취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너무 지치고 바쁜 데다가,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불신이 컸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섭외 연락만 수십 통 했던 것 같은데요. 설득 끝에 만난 한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저를 보자마자 “근데 (취재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는 과정도 험난(?)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요. 정확한 시간은 정하지 못하고, 점심에 잠깐 틈을 내서 보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언제 호출(?)될지 모르니 일찍 가야겠다는 생각에 오전 8시쯤 지하철을 탔는데, 40분쯤 뒤 혹시 지금 볼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점심에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요(실제로 점심엔 출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넉넉하게 일찍 출발한 덕에, 다행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 말이 없다” “다 똑같은 얘기다”라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덕분에 한참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공의들이 떠난 뒤 남은 의료진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병원 내 ‘비상응급의료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환자를 받지 못하고,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등등.
당장 쓸 내용들이 많아 기사에 담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점 동료들 간 신뢰가 옅어진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각기 다른 과 의료진이 서로 협력하며 ‘팀 빌딩’을 해갔다면,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고요. 무언가 해보자는 사람은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일 뿐이고, ‘저 사람도 떠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동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의료진에게도 환자에게도 불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인터뷰를 하러 올 때도, 갈 때도, 중간에 잠깐 화장실을 갈 때도 뛰어다니셨는데요. ‘평소 잠깐의 틈도 갖기 어려우신가 보다’ 짐작했습니다(추석 연휴 3일 내내 당직 근무 하셨다고요). 참, 이 이야기도 기사에 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현장에 남아 고군분투하는 의사, 구급대원, 간호사들이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구급대원은 환자가 위험한데 응급실이 받아주지 않아서, 응급실은 도저히 여력이 안 되는데 구급대원들이 들이밀어서, 갑작스레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게 된 PA 간호사는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되다 보니 그런 건데요. 왜 숨 돌릴 틈 없이 애쓰는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다들 “이 상황이 제발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듣는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기사를 썼으니, (다들 벌써 읽으셨겠지만) 꼭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앞의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제게 물었던 것처럼, 저도 매번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럴 때마다 제 기사를 읽어주실 님과 독자 여러분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앞으로도 의·정 갈등을 포함해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성실히 취재하고 또 쓰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곧 찾아올 가을도 틈틈이 만끽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