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더운 추석이 어디 있어!’라고 투덜거린 지 불과 사나흘 뒤부터 느닷없이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추석 잘 보내셨고 건강하시지요? 님께 편지 띄울 기회를 활용해서 제가 써온 ‘경제 기사란 것’에 대해 변명 겸 넋두리나 늘어놓을까 합니다.
저는 1990년대 중후반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반의 5년 이후엔 한 번도 경제 부서를 벗어나지 못했지요. 다른 부문의 취재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요청은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겪은 국장‘들’은 도무지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죄(?) 때문인 듯합니다. 각설하고, 이 정도면 꽤 오랫동안 경제 관련 기사만 써왔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초보 기자일 땐 지금의 제 연차쯤 되면 200자 원고지 수십 장 정도야 앉은 자리에서 뚝딱 써낼 줄 알았어요. 그러나 이 직업엔 ‘숙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도 기사를 쓸 때마다 끙끙 앓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우선, 어떤 일이나 그렇듯이, 경제 기사 쓰기에도 나름의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표나 그래프를 읽는 등 경제라는 현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쓰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문제는 이에 필요한 지식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2000년대 후반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개시한 ‘양적완화(QE)’는, 당시 저의 통화정책 관련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긴, 그 시점에선 연준도 자신이 뭘 하고 있으며 결과가 어떨지 잘 몰랐을 겁니다.
QE를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불렀던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자 입장에선 세상을 뒤흔드는 주요 현안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안 쓸 수는 없거든요. 주어진 시간 내에 접근 가능한 자료와 취재원을 모두 동원해서 어떻게든 써내야 합니다. QE 이후에도 세상의 변화와 함께 인공지능이나 심지어 반도체 기술에 이르기까지 낯선 주제들이 경제 부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업데이트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기자가 써야 하는 글은 논문이 아니라 기사입니다. 해당 부문 지식에 익숙한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논문)이 아니라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다만 뭔가를 어느 정도 아는 것과, 그 내용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것은 상당히 다른 영역입니다. 잘 모르면 잘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골치 아프’지만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주제라면, 기자로서 진지하게 도전해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기사를 출고하기 전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보고 다른 기자들에게 읽혀 소감도 들어봅니다. 저로선 유감이지만 만족스러운 반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딴엔 ‘꽤 쉽게 썼잖아’라고 혼자 우쭐했다가 기사의 디지털판에서 ‘왜 기사를 안 쓰고 논문을 썼냐’라는 질타성 댓글을 읽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쉽게 쓰려는 노력이 기사의 길이만 늘리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QE 관련 기사를 쓰려면 국채를 거론해야 하고, 국채와 관련해서는 장단기 금리 나아가 화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 제도들이 사슬처럼 이어집니다. 그러나 분량이 정해져 있기에 어느 선에서 사슬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 절단면을 어디로 정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독자들은 늘어지는 기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도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 연준의 최근 ‘빅컷’ 관련 기사를 마감하다가 저 자신에게 느낀 답답함이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에 반영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기준금리니 수익률이니 ‘장기금리 마이너스 단기금리’니 하는 수치들을 너무 많이 인용해버려서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궁리하고 있었거든요.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