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뉴진스 멤버 하니의 ‘푸른 산호초’ 영상을 모른다는 겁니다. 일본의 1980년대를 풍미한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노래를, 흰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하니가 불러서 한국과 일본이 모두 뒤집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모르다니! 같은 한국에서 사는 것 맞느냐고 깔깔거리며 웃다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도 전혀 모르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이번 호에 ‘서울로 가도 꿈은 미뤄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는데요.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직하는 20~34세가 어떤 업종으로 이직했는지 분석한 내용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님은 어떤 업종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세요?
놀랍게도 청년 남성은 이직 패턴 상위 20개 중 12개, 여성은 11개가 일자리를 옮길 때 ‘인력공급업’을 택했습니다. 인력공급업이란 ‘파견’ ‘아웃소싱’으로 불리는 업종인데요. 근로계약은 파견업체와 맺지만 고객사에 보내져서 그곳의 업무 지시를 받는 형태입니다. 한국에서 파견은 최장 2년까지만 일할 수 있어요. 그 후에 정규직이 되면 좋겠지만, 파견·용역 등 ‘비전형’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비정규직이 취업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2021년 기준 14.2%라는 통계가 있습니다(이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현황’, 한국노동연구원 패널브리프 제23호, 2023).
저희가 입수한 자료는 계약기간 1년 이상 기준입니다. 14.2%라는 낮은 정규직 전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혹은 아예 기대를 접고도) 1년 이상 파견직으로 일하기 위해 서울로 온 20~34세는 누구일까요? 아무리 검색을 해보아도, ‘에펨코리아’에서 ‘파견직으로 6개월 일하러 서울 가는 게 맞느냐’고 물어본, 경남 김해에 산다는 익명의 취업준비생 글 정도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꼭 들어맞는 사례자 섭외에 실패해서, 서울로 가기보다 지역에 남은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이전에 제가 만난 전직 파견직은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에서 휴대전화를 만들다 메탄올에 중독되어 2급 시각장애를 얻은 청년이었습니다. 사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은 파견이 금지돼 있습니다. 메탄올 집단 중독이라는 끔직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분의 존재가 제게로 가닿을 수 있던 것입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비수도권의 청년 남성이 서울로 많이 이직한 업종 중 하나가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주주야야비비’로 불리는 3교대 근무를 하면 월 280만원(세전) 정도를 받을 수 있고, 하루 8시간씩 3일간 경비원 신임 교육을 듣고 이수증을 발급받으면 취업할 수 있어서 진입이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하네요. 경호·보안 아르바이트를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편돌이(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길 가다 보안요원을 마주치면 달리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 혹시 이미 알고 계셨나요?
실은 언론사도 굉장히 동질적인 집단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시사IN>도 서울에 있지요. 이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파견직 일상을 브이로그로 올리는 분들이 있네요. Z세대를 섭외하려면 역시 유튜브를 검색했어야 하는구나, 땅을 치고 후회하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지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 ‘여론’을 형성하기 어렵고 오직 ‘사건’으로만 드러나는 존재들,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아직은 가닿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떠들어야 할 사명을 느낍니다. “지방 사는 익들(익명게시판 사용자) 혹시 일자리 어때?” “우린 공장 아니면 쿠팡뿐” “공무원, 간호사 아니고서 여자 일자리 전멸임··· 중소(중소기업)도 미래를 그릴 만한 곳이 없어” 이런 이야기들이 커뮤니티 밖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안부를 더 잘 물을 수 있도록, 더 부지런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