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제겐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애인의 반려 고양이 ‘히로’가 따뜻한 곳을 찾다가 제 품에 안기는 횟수가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반려동물의 부들부들한 털 촉감과 온기를 느껴본 독자님들은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실 텐데요. 더군다나 히로는 흔히 말하는 ‘개냥이’가 아니기에, 도도하던 녀석이 품에 안기면 기쁨이 배가됩니다.
사실 히로는 지난 6월 급성신부전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신부전은 고양이 사망원인 최상위로 꼽히는 병입니다. 히로가 부쩍 구토를 하길래 병원에 가봤는데, 이미 치료가 힘든 신부전 말기였습니다. 매년 하던 건강검진을 조금 미루던 차에 발견한 병이라 애인과 저는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고양이들은 가끔 사료나 털 뭉치를 토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넘긴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병원에서 우선 수액 치료를 해보자는 말에, 그날 바로 히로를 입원시켰습니다.
히로가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 저는 <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휴대전화에 자꾸 진동이 울려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히로가 신장 수치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병원의 연락이었습니다. 입원시킬 때까지도 막연히 히로가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생방송 도중 눈물이 터져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 동기 이한울 PD에게 방송을 맡기고 잠시 화장실에 갔습니다. 팀원들의 배려 덕분에 방송이 끝나자마자 히로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난생처음 본 고양이의 입원실은 사과 상자 크기 정도 되는 투명 아크릴판 육면체였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히로는 밥과 물을 강제 급여하는 콧줄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콧줄 고정용으로 코에 박아둔 스테이플러 심이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만큼 히로는 매우 아파 보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아픈 히로를 집에 데려가 잠시나마 함께 있다가 하늘로 보내주는 것. 둘째로 더 큰 병원으로 옮겨 투석 치료를 받는 것. 의사 선생님은 소형 반려동물 투석 치료는 한 번 할 때마다 수백만 원이 들기에 완치까지 비용도 만만찮고 혹여 투석하더라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반도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을 나온 애인과 저는 히로가 없는 빈집을 향해 아무 말 없이 계속 걷기만 했습니다. 투석을 시작하면 최소 2~3회는 해야 하고 추가 수술 및 입원비까지 생각하면 병원비로 수천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애인은 올해 막 직장에 들어갔기에 그 정도 목돈이 없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 통장엔 돈이 조금 있었지만 천만 원 단위의 돈을 쓰는 건 지금까지 열심히 모아둔 전부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인의 고양이지만 내가 이렇게 큰돈을 쓰는 게 맞나?’ ‘애인과 헤어진다면?’ 히로가 들으면 안 될 별별 생각이 다 들자, 우선 히로와 나의 관계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애인과 저의 관계 못지않게 히로 역시 저와 오랫동안 깊은 시간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나는 돈을 왜 모으는가?’로 뻗어 나갔습니다. 대학생 때 한 수업에서 ‘앞으로 돈을 얼마만큼 벌고 싶나’를 주제로 토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밥과 술을 살 때 돈 걱정이 들지 않는 정도로 벌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기를 넘어 객기 넘치는 대답이었습니다. 돈 걱정 없이 밥과 술을 사려면 엄청나게 많이 벌어야 하더군요. 또 제가 부자가 된다 해도 과연 걱정 없이 그 돈을 쓸 수 있을까요. 결국 핵심은 많은 돈이 아니라 사랑에 있었습니다. 돈 모아서 맛있는 걸 사먹고, 집도 사고, 여행도 가고 다 좋을 테지만 이것들 모두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랑하는 존재, 히로를 위해 모아둔 돈을 쓸지 말지는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애인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적은 돈일 테지만 히로 병원비를 보태겠다고, 투석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결국 히로는 애인과 애인의 가족 그리고 저의 조그만 보탬으로 인공 신우 수술과 투석을 받았고, 한 달여 입원 끝에 기적적으로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다시 소변에 균이 발견돼 통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히로는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 생각합니다. 히로가 입원했을 때 애인과 저는 매일 병원에 들렀습니다. 퇴근 후 병원에 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매일 가서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히로와 말이 통하진 않지만, 눈빛·목소리·온도로 우리가 자기를 얼마나 응원하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히로도 느꼈기에 그 힘든 수술과 투석을 잘 견뎌낸 거라 생각합니다. 도리어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진심을 닿게 하려고 더 노력한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큰 고비를 넘긴 씩씩한 히로는 계속 힘을 내 꼭 완치할 거라고 믿습니다.
히로는 퇴원 후, 부쩍 애교가 늘었습니다. 입원 전엔 고양이 애정의 척도인 ‘꾹꾹이’를 여태껏 두 번밖에 안 해준 녀석인데, 퇴원 후 15일 연속 꾹꾹이를 해주더군요. 히로는 제가 잠들면 얼굴 근처로 와서 ‘야옹’ 하거나, 꼬리로 툭툭 쳐서 자주 깨웁니다. 제가 못 잘까 봐 걱정된 애인은 히로가 깨울 때 무시해야 다음번에 안 깨운다고 팁을 줬지만, 저는 히로가 오면 약속한 듯 이불을 들어 터널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히로는 터널에 쏙 들어와 제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 비빕니다. 저는 녀석을 안고 손으로는 털을 쓰다듬습니다. 골골대는 히로, 눈이 마주치면 눈을 천천히 깜빡여주는 히로를 보면 잠이 백번 깨도 백번 터널을 만들어줘야지 다짐합니다. 아마 녀석도 자신의 진심을 닿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히로가 큰 병을 앓은 후, 더 가까이 다가온 건 제가 큰돈을 썼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당연히 히로는 돈이 뭔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적금을 깰 만큼 큰돈을 쓰고 나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리어 필요할 때 병원비에 보탤 수 있는 돈을 잘 모아둔 스스로가 뿌듯합니다. 이번 경험 덕분에 돈을 왜 모아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돈을 언제 써야 하는지 확실히 배운 것 같습니다. 누군가 다시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고 싶나’ 묻는다면 ‘돈 걱정이 들더라도, 사랑하는 존재에게 쓸 수 있는 돈이 통장에 들어 있을 만큼’이라고 대답할 거 같습니다. 이것 역시 엄청나게 많은 돈이네요.^^ 아직도 패기 넘치는 저 자신에게 웃음이 나옵니다.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히로를 꼬옥 껴안고, 온기를 나누며 잘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님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와 함께하는 따스한 겨울이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히로가 따스한 햇살 아래서 자는 사진 한 장 자랑으로 남기며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