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잘 지내시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편집소통팀 황정희입니다.
이번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지난해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저도 오랜 육아와 양육의 시기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챙기고 치다꺼리하는 데 들이던 시간도 줄었습니다. 그동안 주어진 상황에 떠밀려 허둥지둥 살아왔다면, 이제 나를 먼저 돌보며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리셋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듯 지난 1년여 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건강 적신호가 켜져 체력을 키우려고 수영을 배웠고, 늘 어수선한 주변 환경을 제대로 정리해보고자 정리정돈 강의를 들었습니다. 수십 년 올빼미 생활을 청산하고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려고 관련 카톡 단체방에도 가입했습니다. 혹시 만날지 모를 응급 상황을 대비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오래 미뤄온 영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아침 한 끼 채소·과일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오랜 기간 달라붙은 습관들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새벽 기상 한두 주 만에 몸살만 된통 앓곤 아침형 인간은 포기하고, 정리 인간이 되고팠던 꿈 또한 수료증만 간직한 채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건강관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고, 몇 가지는 새로운 루틴으로 자리 잡아 소소한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변화가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늘 약간의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대, 활자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한동안 책이라고는 아이에게 읽어주던 그림책과 창작동화가 거의 전부였고, 양육에 필요한 책들을 가끔씩 찾아 읽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 ‘책 읽기’도 위 계획 중 하나였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에세이류를 고를 뿐, 문학하고도 친숙하지 못했고 무게감 있는 책들에는 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달 전, 출근길 전철에서 업무상 읽은 첫 원고가 저에게 설렘을 안겼습니다. 반 페이지 분량인 ‘기자가 추천하는 책’(제892호 ‘아첨하지 않는 문학의 힘’). <시사IN> 김다은 기자는 진은영 시인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소개하며, 문학을 읽는 독자를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했습니다. “문학은 ‘우리 자신도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고 죽어야 하는 것’을 되새겨준다”는 데서 기자는 책을 덮을 뻔했다는데(^^) 저는 이 대목에 끌렸습니다. 뒤이어 인용된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니체··· 아첨하지 않는 완고한 작가들” “고통에 삶이 출렁거릴지라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내줄 것” “어떤 슬픔 속에서도…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 같은 말들이 와닿았습니다. 그래 문학을 읽자! 근래 느끼는 공허함을 채워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한창 마감하는 중에 옆자리 동료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속보를 전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전 세계 보편의 시대정신을 담지한 이에게 준다는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왠지 앞의 책 추천 글과 같은 날 전해진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우연이 아니라, 저를 ‘읽는 인간’으로 이끄는 어떤 명령같이 느껴졌습니다(너무 견강부회인가요). 우리네 삶에 상존하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봐, 라고 말하는 듯했죠. 전에 작가의 다른 수상 소식을 다룰 때는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부끄러움은 던져두고, 하나씩 읽어나가며 작가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쓰고 보니 오래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 중에 <읽는 인간>이라는 제목도 있네요. 읽기 목록에 저장합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읽는 사람’으로서 독자님께 인사드려보겠다고 약속 같은 다짐을 해봅니다.
날씨가 많이 싸늘해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