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수년간의 공직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공직을 통해 이익을 얻은 적도 없습니다. 공직 생활 동안 정의에 반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1973년 11월17일 닉슨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역사적인 망언을 합니다. ‘I am not a crook.’ 우리말로 해석하면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워터게이트 수사 한복판에서, 신문 1면을 장식한 거짓말에 국민은 분노했습니다. 그의 거짓말을 드러낸 건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였습니다.
닉슨 대통령 보좌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백악관의 녹음 장치를 증언했습니다.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는 대통령에게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녹음테이프에는 ‘랫퍼킹(rat-fucking)’이라 불린 백악관 닉슨 팀의 정치공작이 담겼습니다. 특별검사 수사망이 좁혀오자, 은폐를 지시한 대통령의 육성도 담겨 있었습니다. 주권자들이 분노한 건 정치공작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의 뻔뻔한 거짓말이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저는 공직 생활을 오래 하면서 공사가 아주 분명한 것을 늘 신조로 삼으며 일을 했습니다. 보고도 딱 계통을 밟아서 해야 하고, 기존 조직을 또 잘 돌아가는지를 봐야 하는 그런 면에서의 또 직보는 필요하지만, 계통을 밟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 거에 대해서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국어사전을 좀 다시 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부부싸움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검사 윤석열을 아주 ‘조금’ 취재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공사가 아주 분명했다’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은 ‘가족 로펌’ 구실을 했습니다. 장모 최은순씨가 무혐의라는 논리를 담은 <총장 장모 의혹 대응 문건>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에서 만들었습니다. 대검 대변인은 출입 기자들에게 이 문건을 배포했습니다. 물론 이 문건도 허위였습니다. 문건에서 최은순씨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한 ‘은행 통장 잔고 위조’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은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검사 윤석열 스타일이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뒤 단행한 첫인사입니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적인 인연을 근거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자기 사람으로 주요 보직을 채웠습니다. ‘윤석열 사단’을 낳게 한 인사였습니다. 이를 묵인한 문재인 정부의 패착이라고 여깁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스타일은 대통령실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참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11월7일 기자회견을 한 직접적인 계기인 명태균씨와 관련한 해명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휴대전화를 교체하지 않아 생긴 문제로 치부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대통령실의 해명이 거짓이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점입니다.
10월8일 대통령실은 명태균씨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 뉴스룸’의 ‘사실은 이렇습니다’에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경선 막바지쯤 명 씨가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 씨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합니다.” 이 해명은 지금도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11월7일 기자회견 때 윤 대통령은 참모 탓으로 돌리며 거짓말이었음을 스스로 털어놓았습니다.
“축하 전화를 받고 어찌 됐든 명태균씨도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자기도 움직였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얘기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제가 비서실에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언론에 얘기하는데 대변인이나 그런 입장에서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얘기하기가 어려우니까 경선 뒷부분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고 하는 취지로 얘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법을 다뤘던 검사 출신인데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냐고? 저는 반대로 그의 거짓말 습관이 ‘검사 DNA’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일종의 특수통 검사 화법입니다. 모든 검사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검사는 법을 수단화합니다. 법을 잘 알고 법을 잘 다루기에 자신을 법 위에 위치시킵니다. 특수통 검사식 법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하는 말이 법치입니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강조했습니다. 정작 윤석열 검사를 비롯해 일부 검사들이 추구하는 법치는 사실상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입니다.
원래 법치주의란 권력자를 법의 지배(rule of law) 아래에 두는 것입니다. 검사들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만 강조하고, 시민들에게는 복종을 강요합니다. 가령 시민들이 수사를 앞두고 휴대전화를 없애면 구속영장을 청구합니다. 정작 자신들이 수사 대상이 되면 검사들은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고”, “휴대전화 교체할 시기가 되어 짜증 나서 바꾸고”, “베이비 페어 박람회에 갔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라고 당당하게 진술합니다(‘라임 술 접대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의 진술). 마치 자신들은 법 위에 존재하듯이 행동합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장본인이 윤 대통령입니다. 그와 똑같은 행위를 했습니다. 자신은 법 위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서슴없이 공천에 관여한 것입니다. 뒤늦게 이를 부인하느라 거짓말을 합니다.
문제는 대통령 일가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공적 조직까지 동원된다는 점입니다.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대표적입니다. 검찰은 애써 드러난 증거에 눈을 감았고,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기자회견을 하며 검사들은 김건희 여사의 주거지, 사무실,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은 시간차만 있을 뿐 덮이지 않습니다.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고 거짓은 몰락을 부릅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확언했던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 7개월 만에 사임했습니다. 저는 윤 대통령의 거짓말 유통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도자의 거짓말을 팩트체크하는 것이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입니다. <시사IN>도 권력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서민경제, 민주주의, 남북 관계 모두가 위기입니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지만 때론 후퇴하기도 하나 봅니다. 어느 거인은 3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감히 여기에 하나만 첨언하면 좋은 매체를 구독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건강한 공론장은 좋은 매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취재 현장을 잠시 떠난 제가 요즘 몰두하는 일이 구독자 분석입니다. <시사IN>이 아니더라도 독자님이 보시기에 건강한 매체를 구독해 주세요. 주변에도 알려주세요. 민주주의는 한판 승부로 결론 나지 않습니다. 지치지 말고 끈질기게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에 <시사IN>도 함께 할 것입니다.
주말에 읽기에는 다소 긴 편지였습니다. 한파가 몰려온다는데, 건강 조심하시길 기원합니다.
덧붙임/ 수능을 끝낸 수험생도, 수능을 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그리고 이들을 뒷바라지한 부모님에게도 이번 주말은 특별히 평화를 빕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