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 전까지 더워서 반팔을 입었는데, 오늘은 스웨터를 입고도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인사드립니다. <시사IN> 문상현 기자입니다.
올해 <시사IN>과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가 참여하는 공동취재팀을 꾸렸습니다. 언론사 울타리를 넘은 일종의 협업 프로젝트입니다. 잘 훈련된 기자들이 계획을 세우고 엉덩이 떼고 발로 뛰어 취재하면, 노련한 베테랑 기자·국장들이 검증해 보도합니다. 지난해 연말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올해 7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공동취재팀의 첫 기획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실태를 추적 보도하는 ‘언론 장악 카르텔’ 시리즈입니다. 처음 기획안이 구성됐을 때 ‘이 혼란한 정국에 한가한 소리만 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까 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공영방송과 주요 언론사의 인사와 재원을 흔들어 언론을 장악하면 그 부작용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독자와 시청자,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스며듭니다.
공동취재팀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작업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작업 과정 곳곳에서 주요 선수로 등장하는 인물과 시민단체들을 연결해 네트워크 지도를 그렸습니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부터 나타난 인물들과 언론 유관 시민단체를 표방하며 우후죽순 설립된 신생 단체들이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언론 관련 정책과 인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단체와 소속 인물들은 대선에선 핵심 지지층으로 활동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언론 관련 기관의 수장이나 주요 보직에 잇따라 배치됐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언론 분야를 움직이는 특정 집단, 세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언론 장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불거진 만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부의 국정 방향에 동의하는 시민단체들과 소속 인사들의 활동이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앞서 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 네트워크 추적이 공동취재팀 보도의 ‘시즌1’ 격이었다면 현재 준비 중인 ‘시즌2’ 보도는 그 네트워크의 기원, 신생 단체 및 주요 인물들의 정체와 가려져 있는 어두운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 작업이 역대 정부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조만간 이어질 공동취재팀 보도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자랑 섞인 보고를 드리자면, 지난 10월24일 공동취재팀이 안종필 자유언론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은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헌신하다가, 1980년 2월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제2대 위원장 안종필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고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제정, 시상하는 언론상입니다. 이제는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도 희끗해진 과거 언론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운 언론계 대선배들 앞에서, 언론 장악 추적 프로젝트로 상을 받아 더욱 뜻깊었습니다. 8월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고, 11월21일에는 전국언론노조가 수여하는 민주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호루라기재단의 호루라기 언론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두 독자 여러분께서 관심 가져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언론사들의 탐사·심층 기획 부서들이 없어지거나 인력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발로 뛴 기사가 없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가성비’ 때문입니다. 대안 미디어는 우후죽순 생겨나고, 뉴스를 찾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듭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기자가 매일 그때 당장 ‘핫한’ 뉴스를 눈길 가는 제목으로 쏟아내는 편이 나을지 모릅니다.
이번 5개 언론사가 참여하는 공동취재팀은 시대를 역행하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오랫동안 품 들여 취재하고 검증해 뉴스를 내놓는 시스템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합니다. 언론은 탄탄한 신뢰 자본 위에 서야 지속 가능한 산업입니다. 공동취재팀은 좁게는 5개 언론사, 넓게는 언론계 전체 신뢰를 높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상 받았다고 자랑으로만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탐사·심층 기획만이, 또 공동취재팀이 언론의 미래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좋아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이 미래를 만듭니다. 기왕 꿈꾼다면 장밋빛 미래가 좋겠습니다. 공동취재팀은 미국 전역의 탐사보도 기자 38명이 참여한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참고해 탄생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BBC 같은 해외 언론이 우리 공동취재팀 보도를 좋은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소개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마침 <시사IN>은 신입기자 공채를 진행합니다.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갈 동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독자님이라면 도전해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셔도 좋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독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