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밤 10시25분. 독자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셨나요? 새로 시작한 한 주의 피로(월요일이 제일 피곤한 것이 K직장인이지요)가 이어지던 화요일 밤이었고,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번잡한 약속을 잡기에는 이른. ‘바람이 좀 쌀쌀해졌네’ 싶던 12월의 아주 평범한 밤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 이번 주에 발행될 <시사IN> 제900호에 들어갈 기사를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던 30대 여성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뉴스를 접한 적이 있으신가요? 원래 이번 주에 제가 마감하려던 기사는 그분이 처음 빚을 지게 된 불법 소액 대출 시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고인이 마지막에 일하던 곳을 몇 번이나 방문해서 겨우 그분 생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난히 취재가 안 되네’ 하면서 고민을 많이 한 기사였지요.
하루종일 끙끙대며 기사를 쓰고 마침내 밤 10시25분, 기사를 탈고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꼬깔콘을 먹으며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를 볼 생각에 들떠 있었죠. 바로 그때 제 짝꿍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한마디 외쳤습니다. “비상계엄이래!!!”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지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에서 물이 뚝뚝 흘렀습니다. 제 첫 반응은 아마 “어, 물 떨어진다”였던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누가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그날은 2024년 12월3일. 말씀드렸다시피 지나치게 평범한 화요일 밤이었던걸요. 하지만··· 그렇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황급히 모바일로는 유튜브를, TV로는 뉴스 채널을 켰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10시30분, <시사IN> 경제팀 단체대화방에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나요?’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종태 선배가 짧은 답장을 했습니다. ‘이거 현실이야?’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가고 있다는 속보, 국회의사당 정문이 봉쇄되었으니 시민들은 모여달라는 메시지 같은 것이 휴대전화 액정에 쉴 새 없이 떴습니다. 그리고 곧 <시사IN> 기자들로 구성된 새 단체대화방이 만들어졌습니다. 방 이름은 ‘1203 계엄선포 국장 공지’. 정치부 기자들과 사진팀 기자들이 국회로 달려 나갔고, 저는 거실에 앉아 꼬깔콘은커녕 냉수만 마시며 끊임없이 업로드되는 정보 공유와 속보들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본청에 진입하는 모습을 긴장하며 보고 있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단체대화방에 글을 적었습니다. “전쟁 나서 뿔뿔이 흩어지면 내가 본가로 갈 테니까 거기서 만나.” 혼자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 무서우면 우리 집으로 올래?”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그 시간을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안부를 나누고 서로 살피며 불안에 떨었을까요. 마침내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을 때 ‘아!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절로 박수를 쳤습니다. 계엄 선포로부터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긴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습니다.
안도감.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분노가 마음속에서 들끓었습니다. 국민들이 쥐여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국민들의 삶을, 일상을 마치 장난치듯 가지고 논 것이 말입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부여해줄 때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위헌적 쿠데타를 일으킬 권한을 준 대한민국 국민은 없습니다. 설사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뽑은 국민들이라도요. 그리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 일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12월5일) 대담을 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습니까?”라며 계엄 가능성을 일축했던, 하지만 결국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장본인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사표를 던지고 꽁무니를 뺐습니다. 그는 SBS와 메신저를 통한 인터뷰에서 ‘계엄군을 국회에 보낸 것이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것이었냐’고 취재진이 묻자 그에 동의하며 ‘최소한의 필요 조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내란을 인정한 답변입니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본인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관이었음에도 “대통령 담화 전에는 계엄 선포에 대해 몰랐다” “국회 군병력 투입 목적은 몰랐다” “계엄군의 실탄 소지 여부는 몰랐다”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아니다‘ ‘몰랐다‘라는 답변으로 적당히 뭉개면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 모든 ‘공범자’들의 태도에 환멸을 느낍니다. 두문불출 중인 쿠데타의 ’우두머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니요. 이번엔 안 됩니다. 더 이상은 그렇게 안 됩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은 야당에 대한 경고성 의미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 윤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리스크들을 단 한번도 제대로 소명하고 진지하게 답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아내를 둘러싼 켜켜이 쌓인 의혹들을 정직하게 마주한 적도 없습니다. 매번 눈에 보이는 거짓말로 일관해왔습니다. 저는 그래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더 이상의 탄핵은 안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계엄 선포는 저처럼 생각하던 시민들에게조차 ‘신호탄‘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수를 둔 셈입니다. 언제든 국민들의 기본권을 ‘술주정’이나 ’떼쓰기’ 하듯 빼앗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국가원수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권한도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행정수반으로서 자신에게 어떠한 능력도, 신뢰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그토록 찬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의 선택에 걸맞은 법적 책임을 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겠지요.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한 말입니다. “어둠의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 것인가? 그래. 부를 것이다. 어둠의 시대에 대한 노래를.” 우리는 저마다의 목소리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시사IN>기자들은 음치가 많은 탓에 펜을 들기로 했습니다. 어둠의 시대에 대한 노래, 아니 글입니다. <시사IN> 시국선언문입니다. <시사IN>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12·3 쿠데타’로 규정하고 독자들과 함께 길 위에 서는 마음으로 제900호를 제작하였습니다. <시사IN> 시국선언문은 계엄 특집호인 900호를 준비한 기자들의 다짐입니다.
12월5일, 뉴스레터를 쓰는 지금 이 시각, <시사IN> 편집국은 키보드 타자를 치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립니다. 멀리서 보면 지난주와 똑같아 보이는 목요일 밤이겠지요. 하지만 당분간 우리에게 일상의, 평범한, 보통의 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을 것입니다. 그것은 애초 우리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