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문화팀 임지영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희는 올해의 마지막 <시사IN> 송년호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희는 송년호마다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커버스토리로 싣습니다. 2024년 올해의 인물은 사실 고민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한강 작가 말고는 다른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연말에 노벨문학상 시상식도 있는 터라 온 마음을 다해 수상을 축하하며, 모처럼 훈훈하게 2024년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12·3 쿠데타 이전의 일입니다.
이후의 상황은 모두 아시는 대로입니다. 12월4일, 저는 한강 작가와 관련해 미리 진행했던 원고 청탁 네 건을 모두 철회했습니다. 모두 상황을 이해해주셨지만 저 스스로 아쉽고 화가 나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전 국민의 수면 부족 현상이 이어졌습니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 와중에 멀리 스웨덴에서 한강 작가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노벨상 수상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작가는 말했습니다.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많이 감동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쓸 당시를 회상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시상식 당일에는 이런 소감을 전했습니다.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분노와 무력감이 짙어질 때마다 격려하듯 작가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가만가만 얘기하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신산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을 겁니다. 누군가 크게 일을 망쳤지만, 그래도 결국 제 안의 ‘올해의 인물’은 여전히 한강 작가라는 말을 하기 위해 멀리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쓰겠다”는 작가처럼 계속해서 꾸준히 상황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험난한 연말,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