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광고팀 박정대 부장입니다.
얼마 전 저는 모처럼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멋들어진 곳으로 간 가족여행이다 보니 들르는 데마다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 저장공간이 문제였어요. 용량이 꽉 차 사진을 찍어도 저장을 할 수 없으니 말짱 도루묵. 결국 급하게 자리를 잡고 휴대폰 메모리 저장공간을 확보하느라 정신없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비워줘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휴지통도 비워야 하고 장도 비워야 하지요. 앞서 경험처럼 핸드폰 저장공간이나 노트북, PC 등의 저장공간도 정리해줘야 합니다. 냉장고도 자주 비워줘야 하고 펜트리도 비워야 또 다른 맛난 군것질거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살다 보니 가장 중요한 비움은 정신과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기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요. 2020년 8월 어느 날, 새 차를 전달받은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 일입니다. 차에서 내리던 딸이, 문짝의 무게가 무거웠는지 아니면 경사면에 차를 세워서였는지 성격만큼 과감히 문을 활짝 열어젖히더라고요. 그 바람에 옆 도시가스관에 문짝이 제대로 끼어버렸지요. “콰직~!” 이후 며칠간 딸과 세상 불편한 사이가 되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얼굴이 멍게에 가까워진 저희 아들. 부모도 많이 신경 쓰이는데 본인은 오죽하겠습니까. 병원은 가기 싫고 시간도 없다 하여 비싼 기능성 화장품을 사용 중입니다. 다른 세 식구의 화장품 값을 합친 것보다 월등히,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 외모에 관심 많을 나이(대학 1년)니까. 그런데 그냥 병원을 가면 안 되겠니? 곧 군대 갈 건데 관리를 그렇게 해야 하니? ··· 현 여친이 관리하라고 하나 보다.’ 혼자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며 마음을 다스리다 결국 바르는 마스크팩까지 사주었습니다. 새벽 1시에 자는 엄마를 깨워 마스크팩을 발라달라더군요. ‘내려놔야지 내려놔야지···.’ 그러기엔 얼굴에 마스크팩을 하고 대자로 뻗어 있는 시커먼 아들놈이 너무 눈에 띄니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주말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 기특하지요. 추후 여행비로 쓰겠다며 열심히 번 돈일 텐데 가끔 가족에게 맛난 것도 사줍니다. 얼마 전에는 일 잘한다며 사장님이 시급을 올려주셨답니다. 빠르고, 정리정돈 잘하며 청결하고 친절하다고. 근데 왜? 딸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을까요. 분명 아르바이트 가게 사장님은 청결하다고 했는데, 정리정돈 잘한다고 칭찬까지 받았다면서, 근데 왜 네 방은···. ‘내려놔야 한다. 내려놔야 한다.’
친구를 좋아하는 아들. 그러하니 집보다는 밖을 좋아합니다. 공부도 밖에서 하고 밥도 밖에서 먹고.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가지요. 그런 아들도 최근 살짝 친구의 기준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 수시로 늦는 친구, 의견을 묻는데 답이 없는 친구, 자기주장만 하는 친구. 생각이 많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들, 아빠도 생각이 많다. 넌 왜 안 일어나는 거니. 깨워달라며? 깨워줬잖아. 근데 왜 안 일어나? 그러다 약속 시간 또 늦어.’ 뒹굴거리다 부랴부랴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또 한번 되뇝니다. ‘내려놔야지. 내려놔야지.’
지난해 과일값이 꽤 비쌌지요. 매일 아침 사과 한 개를 먹는 저로서는 고통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에서 저렴한 값에 직접 사과를 가져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비싼 사과 가격에 질렸던 저는 10㎏짜리 두 박스를 구매해버렸습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얼마나 행복하고 배가 부르던지요. 도착 후 3층까지 (참고로 주택입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습니다) 들고 나르느라 살짝 힘들었지만 그것마저 좋았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20㎏을 먹어치우기란 역시 무리였나 봅니다. 5㎏ 정도는 먹지 못하고 썩어서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놈의 욕심이란.
살다 보면 정말 많은 비움의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잘 비우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능력치를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저의 후회 가득한 경험이 채워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새해 또 어른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