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던 주말, 저는 각종 ‘부정선거 음모론’ 관련 게시물을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설들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자못 비장한 자세로요. 그 어느 때보다 ‘전투적인’ 명절을 대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모와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정치 얘긴 되도록 하지 말자’는 게 그간의 기조였는데, 이제 정말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초유의 사법부 테러까지 이어지는 걸 목도했으니까요. 부정선거를 믿는 이들과 어떻게 ‘잘’ 싸울지가 인생 최대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일단 자세히 알아야겠더라고요. ‘선관위 데이터 조작설’이라든가 ‘중국인 개입설’과 같은 이야기에 일일이 반박 근거를 메모해두는 게 명절 준비라니, 처지가 우습다가도 이런 분열을 만든 게 누구인지 자꾸만 묻게 되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측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부정선거론’을 반복해 주장하고 있죠. 이에 대해 선관위는 여러 차례 입장문을 통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선거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 또한 21대 총선 후 제기된 선거 무효 소송 126건에 대해 모두 기각하거나 각하했고요. 선관위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지난 5년 동안 선관위 압수수색이 181차례 집행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선관위는 물론이고 사법부와 수사기관 모두 어느 곳에서도 부정선거를 인정한 곳이 없는데, 대통령과 일부 여당 정치인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사실’처럼 둔갑하고, 극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부정선거론은 한국만이 아니라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등 극단주의자들의 부상에 ‘동원’된 논리였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으로서 이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에서 수요일마다 뉴스 리액터로 나오는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책 <개소리에 대하여>를 인용해 ‘거짓말의 시대가 아니라 개소리(Bullshit)의 시대’라고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이나 가짜뉴스보다 대응하기가 어려운 건 ‘개소리’가 진실에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아무리 근거 없는 말이더라도, 말할수록 믿게 된다는 비극적 아이러니입니다.
음모론자 혹은 극우 지지자. 이런 말들로 선을 긋고 마음껏 비난하면 간단할 텐데, 하필 가족이라니 갑갑하고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찾아보는 명절의 쓸모(?)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요? 서로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요. 산업화 세대부터 MZ 세대까지 마주 앉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전에 청주를 한 잔씩 곁들이며 밤늦도록 설전을 벌였습니다. 대화 내용은 전혀 화목하지 않았지만요. 제가 메모해간 반박 근거들이 아버지에게 그다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지만(돌아온 말은 ‘그건 편향됐다’는 반응뿐···), 그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어떤 유튜버를 왜 보게 되는지, 또 어떤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전파’되고 있었는지 등 앞으로를 위한 나름 중요한 실마리도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김은지의 뉴스IN’ 설 특집 방송으로, 최근 보수 결집세를 보이는 여론조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1월27일자 방송), 또 명절 계엄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1월28일자 방송) 다뤘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두 편은 꼭 추천드립니다!) 무척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꿀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외로운 사람일수록 극단주의자에게 투표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두려움을 벗어나는 건 정당과 정치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몇몇 좋은 관례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요. 이를테면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것, 그러니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가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 같은 것들입니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중). 결국 이를 부정하는 정치 지도자의 메시지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는 원인이겠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끝내 이기겠지만 순탄한 과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웃으면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오래 싸울 수 있다”라고 조언합니다. 광장을 수놓은 깃발과 응원봉들처럼요. 무기력에 대적하는 무기가 있다면 연대와 유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유튜브 댓글에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달렸더라고요. 한편으론 동지가 생긴 것 같아 반갑기도 했습니다. 화기애애할 수 없는 설 명절이었지만, 적당히 치열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이 머니까요. 부정선거론을 믿는 가족과 잘 싸우는 꿀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저도 ‘개소리’의 시대와 어떻게 잘 싸울지 고민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