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그래도 봄이 오기는 오나 봅니다.
집 앞에 있는 나무에 새가 집을 지었습니다. 마침 창문과 둥지 높이가 같아서 틈만 나면 외풍이 드는 창가에 서서 둥지를 들여다보는 게 요즘 소소하고도 큰 즐거움입니다. 둥지가 새로 생겼다는 걸 인식하고 첫 며칠 동안은 누가 주인인지 몰랐는데요, 며칠 전 드디어 신축 빌라 세대주(?)의 얼굴을 봤습니다.
바로 까치였어요.
허술한 인간의 눈에는 이미 다 완성된 것 같은데, 까치는 끊임없이 부리에 자잘한 나뭇가지를 주워와 둥지를 더 튼튼하게 만들더군요. 어디에서 이렇게 비슷한 크기의 나뭇가지만 쏙쏙 모아오는지 참 신기합니다. 홈디포 같은 새들만의 인테리어 가게가 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저렇게 성실해야 젊은 나이에 건물 한 채는 올릴 수 있나 보다, 속으로 탄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는 까치가 아닌 까마귀 소리에 잠이 깼는데요,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니 새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커다란 까마귀가 둥지를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더군요. 임장을 다니는 건지, 그냥 거저 둥지를 얻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까치가 돌아와 둘이 소유권을 다투며 싸우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봤는데, 몇 번 자신의 몸 크기를 둥지에 대보던 까마귀는 집 사이즈가 영 탐탁지 않았는지 훌쩍 날아가더라고요. 이렇게 동물의 모든 행위를 세속적인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당연히 이름도 붙여줬고요, 새로 생길 까치 가족의 이름도 이미 줄줄이 정해뒀답니다) 스스로 우습기도 합니다.
뉴스를 보다가도 그 너머 까치 둥지에 눈길이 닿으면 어쩐지 TV를 끄고 조용히 있고 싶어집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새로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흘긋흘긋 살펴보다가 정말 TV를 끄고 요모조모 둥지를 바라보기도 하고요.
그때의 적막이 참 좋습니다.
나뭇가지가 얼마나 섬세하게 흔들리는지도 처음 알게 됐어요. ‘이런 시국’에 참 한가한 소리였습니다만, 이런 때일수록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님도 주말만은 화면을 덜 보시고, 직접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오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