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이 9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2월25일 지정 변론기일이 종결되면서, 윤석열 파면 여부에 대한 재판관들의 마지막 판단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국회가 지난해 12월14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날로부터 73일 만입니다.
그동안 상당한 양의 보도가 쏟아졌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탄핵심판의 쟁점이 무엇인지, 각 쟁점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헌재는 변론준비기일 두 번과 변론기일 열 번을 열었고 증인 총 16명을 불러 12·3 계엄의 밤을 복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윤석열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한편 증인들은 주요 쟁점에 대해 엇갈린 증언을 내놨습니다. 비상계엄 당일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흐름을 놓지 않고 쭉 따라오지 않았다면, 독자님들도 공방과 증언의 맥락과 의미를 간단히 파악하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탄핵심판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결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요소는 있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증인과 윤석열에게 던진 질문들입니다. 통상 재판관들의 직접 질문은 청구인 측과 피청구인 측이 제출한 서면, 변론 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핵심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따라서 재판관들의 질문을 보면, 탄핵심판 결론을 내놔야 하는 그들이 무엇에 집중했는지, 어떤 점을 쟁점으로 보고 있는지,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탄핵심판의 가늠자라는 뜻입니다. 10차례 변론기일에서 16명의 증인을 상대로 17차례 증인신문이 이뤄지는 동안 재판관들이 던진 질문을 분석해봤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간략히, 대신 핵심만 짚어서 해설해드리겠습니다.
“계엄군은 국회에 왜 갔습니까?”
헌재는 탄핵심판을 시작하면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크게 5가지로 정리했습니다. ①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 여부 ②군·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여부 ③선관위 군 투입과 영장 없는 압수수색 시도 여부 ④계엄 포고령의 위헌성 여부 ⑤법관 체포 시도 여부입니다.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인정되면 파면이 선고됩니다. 따라서 이 5가지 탄핵소추 사유가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입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 끌어내라고 지시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윤석열 : 없습니다.
-1월21일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
탄핵 소추 사유 ②번 ‘군·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여부’에 대한 질문입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탄핵심판 진행만 전담해왔습니다. 10차례 변론기일 중 쟁점과 관련해선 단 하나의 질문만 던졌는데, 그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번 탄핵심판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계엄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계엄이 위헌·위법했는지 등을 이 질문 하나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은 부인했지만, 헌법재판관들은 다른 증인들에게 ‘국회 활동 방해’에 대한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헌재에 출석한 증인 16명 중 10명이 이 질문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증인들을 향한 재판관들의 질문을 모두 세어보니, 이 지점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기도 했습니다. 헌재가 유일하게 직권으로 채택한 증인(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대장) 역시 국회 장악 시도 여부를 묻기 위해 불렀습니다. 국회 활동 방해가 이번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는 뜻입니다.
헌법 제77조는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인정하지만, 절차와 내용에 대해서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정부와 법원 권한에 대해 특별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계엄 해제 요구권을 부여받은 국회에 대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재판관들이 국회 장악 시도의 사실관계 확인에 주력한 것은, 이를 통해 비상계엄의 위헌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계엄 해제 의결을 할 수 있는 국회 활동을 막으려 했다면 계엄 목적이 ‘국헌문란’이라는 점이 확실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쟁점과 관련된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조지호 경찰청장의 검찰 진술입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계엄 해제 의결이 있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여섯 번 받았습니다. 첫 번째 통화에서부터 “국회로 들어가는 의원들을 다 잡으라”고 지시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조지호 청장 검찰 조서는 헌재에서 증거로 채택했습니다. 계엄 당시 경찰 투입은 단순 질서유지가 아니라 국회의원 진입을 막으려는 봉쇄 쪽에 무게가 실릴 수 있습니다.
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의결정족수가 안 찬 것 같으니 인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헌재와 국회, 검찰에서 증언 및 진술했습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헌재 증언은 거부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그런 취지의 지시로 이해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두 사람의 부하인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장과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사령관들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의원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5분 국무회의의 실체
정형식 재판관: 구체적인 비상계엄의 내용, 실체적인 요건이 충족됐는지 심의하는 거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체적 요건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요건이 충족됐는지 그리고 일시는 언제 한다, 그리고 시행 계획은 어디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은 누구다, 이런 얘기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현장에서 11명이 모였을 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11명 모였을 때 말씀하신 건 제가 못 들었고요. 개별적으로 이렇게 하실 때 계엄의 필요성, 당위성에 대해서는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정형식 재판관: 다음에 그 비상계엄 선포문, 아까 말씀하신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를 했습니까? 장관들이나 증인이 부서를 했냐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1월23일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
국회 활동 방해 다음으로 재판관들이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인 쟁점은 ‘계엄 전 국무회의 적법성’이었습니다. 탄핵 소추 사유 ①번,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 여부와 연결돼 있습니다. 계엄 선포와 해제는 국무회의를 거쳐야 합니다(헌법 제89조 5호). 12·3 비상계엄 선포 전 약 5분간 열린 국무회의 실체와 관련한 재판관들의 질문은 헌법 조항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윤석열 측은 계엄 직전 ‘적법한 국무회의가 열렸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은 김용현 전 장관뿐만 아니라, 한덕수 국무총리(2월20일 10차 변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2월11일 7차 변론) 등을 상대로 다섯 차례 질문했습니다. 직접 회의에 참여한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개회·폐회 선언‘이나 ‘부서’ ’안건 설명’ 등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따진 것이었습니다. 국무회의와 관련해 특히 주목받았던 증인은 한덕수 국무총리입니다.
김형두 재판관: 이게 지금 사법절차잖아요. 이 재판이 증인에게 바라는 것은 뭐냐 하면 증인에게 그런 사법절차에 있어, 있어서의 그런 판단을 대답해달라는 게 아니고요···. 저희가 증인한테 듣고자 하는 것은 그냥 증인의 생각을 그냥 듣고 싶은 거예요. 그래야 저희가 사법적인 판단을 하죠.
한덕수 국무총리: 통상의 국무회의가 아니라는 제 말씀과 그것이 형식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는 제가 하나의 팩트로서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지금 통상의 국무회의와 달랐다는 취지로 간담회로도 말씀도 드려봤고,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죠‘ 하면 ’상당히 동의한다’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2월20일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무회의가 적법했냐’는 국회 측과 윤석열 측 질문에 “개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 수사와 사법절차에서 판단돼야 한다”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수사기관 조사에서는 명확하게 “국무회의가 아니라고 본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탄핵심판에서는 방어적으로 답변한 것입니다. 앞서 재판관의 질문은 재판관이 직접 한덕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부드럽게, 그러면서 집요하게 명확한 답변을 끌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감자,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정형식 재판관: 검거하려 해도 여인형 사령관이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들이 검거하러 나갈 일인데 위치추적만 받으면 되지 왜 국정원이 체포하러 다녀요? 거기(메모)다가 ‘위치추적, 검거’ 말하자면 ‘지원’ 이런 식으로 적어놓는 게 맞지 않아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저도 깊은 생각을 하면서 적은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그냥 갈겨 쓴 부분이기 때문에, 약간 다소 합리적이지 않게 적어놨던 부분 인정하겠습니다.
-2월4일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
탄핵심판에서 큰 관심을 받은 증인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었습니다. 유일하게 두 차례(5차, 10차 변론기일)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치인 체포 명단이 기록된 이른바 ‘홍장원 메모’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윤석열 측은 체포 명단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명단은 홍장원 전 1차장뿐만 아니라 방첩사와 경찰에서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윤석열 측은 체포를 지시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김용현 전 장관이라고 주장합니다. 김용현 전 장관도 윤 대통령은 지시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체포가 아니라 ‘계엄 포고령 위반 가능성이 큰 인물에 대한 위치 파악’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국회 측이 제시한 증거가 홍장원 전 차장의 증언입니다. “싹 잡아들여” “방첩사를 지원해”라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명단을 받았다고 홍 전 차장이 증언하고 있으니 윤석열이 체포를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정치인 체포 지시 여부는 일단 ‘말’로 전달됐기 때문에 입증 정도가 다른 쟁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래서 윤석열 측은 국회 측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홍장원 전 차장의 진술 전체를 흔드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홍 전 1차장이 작성한 메모의 진위 여부, 메모를 작성한 시점과 장소 등등을 탄핵심판 내내 문제 삼았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홍장원 전 1차장에 대한 재판관들의 질문을 보면, 핵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재판관들은 ‘메모’ 자체보다 홍장원 전 1차장의 진술 신빙성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메모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정치인 체포 지시를 한 사람이 윤석열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궁금해했다는 뜻입니다. 재판관들이 홍 전 1차장에게 날카롭게, 공격적으로 물었던 건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홍장원 전 1차장 증인신문 내용은, 쟁점으로 따지면 ‘국회 활동 방해’에 속합니다. 이와 관련한 윤석열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는 홍 전 1차장뿐만 아니라 군·경찰에 전방위로(체포, 국회 봉쇄 등) 내려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메모를 두고 국회 측과 윤석열 측의 공방이 치열했더라도, 국회 활동 방해 쟁점 자체가 홍 전 1차장의 메모 하나 때문에 전면 부정될 가능성은 아주, 매우 낮다는 뜻입니다.
빼놓을 수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
증인 16명 중 재판부는 단 3명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야당의 예산 삭감과 줄 탄핵을 증언한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 그리고 ‘부정선거론’과 관련된 증인인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입니다. 윤석열 측은 탄핵심판의 시작과 끝에 ‘부정선거론’ ‘거대 야당 폭거’를 비상계엄의 배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혹들이 계엄을 결심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심각했다는 걸 증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재판관들은 관련 증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겁니다. 윤석열 측이 주장하는 계엄 선포 이유가 무엇이든, 계엄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걸로 해석됩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재판관의 질문이 아예 안 나온 건 아닙니다. 1월23일 김용현 전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딱 한 번 나왔습니다. 원문 그대로 보여드립니다. 이번엔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재판관이 왜, 어떤 의미로 질문했는지 판단해보시죠.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잘 따라오셨다면 쉽게 파악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미선 재판관: 이 사건 계엄의 목적은 거대 야당에 경종을 울리고 부정선거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다?
김용현 전 장관: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다기보다 부정선거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서 부정선거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말 없었다면 ‘부정선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면 될 것이고···.
이미선 재판관: 그러면 이러한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김용현 전 장관: 비상계엄 요건은 대통령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